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6.10 만세운동

육십 만세 운동
⏰1926, 순종의 인산일

순종 인산일에 맞춰 학생들이 주도한 대규모 항일 시위로,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됨.

■ 배경
 ▶ 1919 3.1 운동 이후 민족운동이 활발해짐.

□ 1920년대 독립운동의 위기
 - 파리 강화회의(1919.1~)에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독립 청원 시도는 좌절됨.
 - 국내에서는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1920) 등을 펼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함.
 - 해외 무장 독립운동은 간도 참변(1920), 자유시 사변(1921) 등으로 전력이 약화됨.
 - 미주 지역의 대한인 국민회는 하와이와 북미 간의 갈등으로 분열됨.
 -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사건, 국민대표회의(1923) 등으로 활동이 위축됨.

□ 순종 승하
 ▶ 1926.4 순종이 승하하자, 
 ▶ 일제는 3.1 운동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경계 태세를 갖추고 군·함대를 배치하며 감시를 강화함.

 ▶ 사회주의자(노총계), 전문학교 학생(사직동계), 중등학교 학생(통동계) 등이 만세운동을 준비함. 
 - 사회주의자의 운동은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됨.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소속 전문학생들이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준비함.
 - 중등학교 학생들은 격문을 작성하고 실제 만세운동을 주도함.

■ 6.10 만세운동
 -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되찾기 위해 거사함.

 - 24,000여 명의 학생들이 순종의 장례 행렬을 따라가며 격문을 뿌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임. 
 ▶ 오전 8:30 종로 3가에서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
 ▶ 오전 8:45 관수교 부근에서 연희전문학교 학생 50여 명이 시위에 참여
 ▶ 오전 9:30 을지로 경성사범학교 부근에서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가 시위에 참여
 ▶ 오후 훈련원, 동대문, 신설동, 동묘 등지에서 시위가 지속됨.
 ▶ 일제의 탄압으로 진압됨.

 ▶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지며 각 지역 학생의 동맹 휴학 등으로 확산됨.
 ▶ 서울에서 210여 명,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이 체포됨.

■ 이후
 ▶ 1926.6 출판법위반 등으로 11명이 기소되어
 ▶ 1927.3 결국 10명은 복역하게 됨.

 ▶ 1929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6.10 만세운동]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