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 대지주가 경제를 장악하여 한국인들은
              극심한 빈곤과 차별 속에 살았고, 
 - 더욱이
            조선교육령(1911)으로 교육 기회마저
            제한받음.
 ▶ 1926
            6.10 만세운동 이후
            민족 운동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은 통합을 모색하였고,
 ▶ 1927.2
            국내 좌·우익 지도자들이 모여 신간회를
              창립함. 
          
            ■ 광주학생항일 운동
□
            나주역 사건
 ▶ 1929.10.30 나주역에서 일본 중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하자, 
 ▶ 이를 본 한국인 남학생이 항의하면서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양측 학생 간 집단 싸움으로 번짐.
 ▶ 일본
            경찰이 일본 학생 편을 들자, 광주 지역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갈등이 격화됨.
□ 1차 학생 시위
 ▶ 11.3
            개천절에 한국인 학생들은 일왕 생일 축하 행사(현, 일본 문화의 날)를
            강요당했고,
 ↘ 당시 개천절은 음력으로 지냄
 ▶ 한국인 학생이 일본인 학생에게 테러를 당하면서
            폭력 사태로 번짐.
 ▶ 장재성(22)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광주 시내에서 대규모
              가두시위를 전개했으나, 경찰에 체포당함. 
 - 11.3
            허정숙(근우회)이 광주에
            내려와 학생들을 만나고, 이후 서울에 사건을 알리며 시위를 독려함.
□
            2차 학생 시위
 ▶ 11.12
            광주 지역 학생들이 시위와 동맹휴학을 벌임.
 ▶ 일제는
            학생들을 체포하고 언론을 통제했으며,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기정학과
            퇴학 등의 처분을 내림.
 ▶ 그러나, 이러한 탄압은
            오히려 항일 열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계기가 됨.
□ 전국적
            확산
 ▶ 11.16 신간회
            광주지회는 시위 소식을 신간회 본부와 조선청년동맹 간부들에게 알리고,
            전국적 확산을 제안함.
 ▶ 12.3
            서울 학생들에게 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격문이 배포됨.
 ▶ 12.9
            서울 각 학교에서 항일 시위가 벌어졌고, 이에 따라 하루 동안 1,200여
            명이 체포됨.
 ▶ 12.10
            신간회는 학생운동을 전국 항일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대책회의를
            개최함.
 ▶ 12.13 신간회 간부들이 체포됐지만, 지시문이 각 지회로 전달되어
              전국적 시위로 확산됨. 
 ▶ 1930.1 허정숙
            등이 만세 시위를 준비했지만, 정보가 누설되어 체포됨.
 ▶ ~1930.3
            항일 운동은 지속되었고, 국내뿐 아니라 만주 등 해외까지 확산됨.
          
            ■ 이후
 ▶ 1953
            ‘학생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함.
 ▶ 1973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학생의 날’을 폐지함.
 ▶ 2006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공식 지정하여 기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