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919.3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권은 코민테른을 창설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을 지원함.
↘ 코민테른(Comintern)은 국제 공산주의
조직(Communist International)
▶ 1920.10 일본이
훈춘 사건을 조작한 뒤
만주에 정규군을 투입하면서
청산리 대첩과
간도 참변이 발생함.
▶ 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밀산으로 이동하여 서일(40)을 총재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 소비에트 정권의 지원을 기대하며 자유시로
이동함.
- 당시 극동 지역의 한인 무장 부대들도 자유시로
집결하면서, 그곳에는 약 4,000명의 무장 세력이 모임.
▶ 1921.3
자유시에서 결집한 사회주의 계열의 한인 무장 부대는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으로 나뉘었으며,
- 재러시아 한인 무장 부대들의 지휘권을 놓고
대립함.
▶ 재러시아 한인 군대의 관할권이 코민테른
동양비서부로 이관되면서 고려혁명군이 우세해짐.
▶ 1921.3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에서 ‘고려 혁명 군정 의회’를 설치하고 한인 무장
부대의 대립을 조정하려 함.
↘ 고려혁명군정의회는 고려혁명군을 총괄하는
정치·군사적 지도 기구
▶ 하지만, 조정에 실패하자 고려혁명군정의회는
대한의용군의 무장해제를 명령함.
■ 자유시 사변
▶ 6.28
고려혁명군과 러시아 적군이 연합하여 대한의용군 주둔지를 공격하고
포위하고,
▶ 대한의용군 등 지휘권 양도를 거부하는 다른 독립군 부대들까지
무장해제 시킴.
-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독립군이 희생됨.
■ 이후
▶ 지청천과 홍범도 등은 이르쿠츠크로 이동하고,
- 무장
해제된 독립군은 자유시에서 탈출하여 만주로 귀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