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흥사단

Young Korea Academy
1913~현재

안창호가 미주에서 창립한 민족 계몽·실력 양성 단체로,
중국과 국내로 확장되었으며, 일제 탄압 속에서도 민족유일당 운동과 브나로드 운동을 주도함.


흥사단(興士團)은 ‘선비를 일으키는 단체’로,
지식과 덕을 갖춘 지도자를 양성하여 민족을 발전시키는 단체라는 의미가 있음.

■ 이전
 ▶ 1907 안창호(30)를 중심으로 국내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가 조직됨.
 ▶ 1909.2 신민회 산하에 청년학우회(흥사단의 전신)를 설립함.
 ▶ 1910 경술국치 
 ▶ 1911 105인 사건(신민회 사건)으로 신민회와 청년학우회가 해체됨.

■ 흥사단
□ 미주 활동
 ▶ 안창호는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취임하여
 - 대중적인 정치 단체가 아닌, 민족의 실력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핵심 인재 양성 단체를 구상함. 
 ▶ 1912 흥사단 창립 위원으로 8도 대표를 선임하고,
 ▶ 1913.5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 창립총회 개최함.
 - 민족의 자립과 발전을 위해서, 실천과 용기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정신을 기르는 단체
 ↘ 1907~1911 국내에서 유길준이 동명의 ‘흥사단’을 운영

□ 중국 활동
 ▶ 1920 상반기에 상하이에서 흥사단 단원을 모집하여, 하반기에 원동위원부를 발족함. 
 ▶ ~1949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될 때까지 존속함.
 - 이상촌 건설 운동과 민족유일당 운동에 관여하고, 한국독립당(1930)의 재정적 후원을 담당함.

□ 국내 활동
 ▶ 1921 흥사단 단원이 국내에 들어와
 ▶ 1922.2 수양동맹회를 발기하고, 이광수는 민족개조론(1922.5)을 발표함.

 ▶ 1922 봄 대성학교(안창호가 세운 학교) 출신 상공인 중심으로 동우구락부 결성되어,
 ▶ 1923.1 동우구락부 창립대회가 열림.

 ▶ 1926.1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는 안창호의 권유로 수양동우회로 통합함. 
 - 수양 단체로 정치와 시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잡지 ‘동광’을 발행함.

 ▶ 중국 관내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이 일어나고(1926) 국내에서 신간회가 창립되자(1927),
 ▶ 미주 본부, 원동위원부, 수양동우회는 흥사단의 개조를 요구했지만, 이광수와 안창호는 별도 개혁당 조직을 주장하며 반대함.
 ▶ 1929.11 수양동우회는 명칭을 동우회로 변경하고,
 ▶ 1931~ 동아일보와 함께 브나로드 운동을 주도함.

 ▶ 1937.6~1938.3 동우회 사건 
 - 조선총독부는 동우회가 미국 한인사회와 연계되어 있고, 기독교계 및 사회문화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직접적인 탄압을 가함.
 - 또한, 민족·문화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을 전향시켜 조선인 동원에 활용하고자 했고, 그 결과 일부는 일제에 협력함.
 - 1937.7 중일 전쟁

■ 광복, 이후
 ▶ 흥사단은 미군정에 참여했으며,
 ▶ 1946 국내위원부를 설치하여 조직을 재정비함.
 ▶ 1948 흥사단 본부를 서울로 이전
 ▶ 1948.8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군정에서 활동한 흥사단 인사들은 권력에서 배제됨.
 - 이는 안창호의 흥사단과 이승만의 동지회 간 경쟁과
 - 두 집단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차이가 이어진 것으로 보임.
 ▶ 1960 4.19 혁명으로 제2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며 정부 요직을 차지함.
 ▶ 1961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 활동을 중지당함.

 ▶ 1963.7 활동 재개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음.




# 참고 자료
[흥사단]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