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이자겸의 난

이척의 난

이자겸은 어린 인종의 즉위를 도운 뒤 권력을 장악했지만,
인종이 그를 제거하려 하면서 척준경과 함께 궁궐을 공격하고 인종을 유폐하였음.

이자겸의 난

■ 배경
□ 경원 이씨의 외척 지위 확립
 - 고려 전기 왕실은 왕족 내부의 근친혼 비중이 높아 외부 가문이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기 쉽지 않았음.
 ▶ 그러나 거란과의 전쟁 중 김은부가 피난한 현종을 대접한 것을 계기로, 현종은 그의 세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음.
 ↘ 김은부의 세 딸은 경원 이씨 이허겸의 외손녀이기도 했으므로, 이허겸 가문 역시 왕실의 외척으로 편입되어 지위가 높아졌음.
 ▶ 이후 제9대 덕종부터 제17대 인종까지 대부분의 왕이 경원 이씨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며, 경원 이씨는 여러 대에 걸쳐 외척으로서의 고려 전기 대표 문벌로 자리 잡게 됨.
 ↘ 제15대 숙종은 정주 유씨(명의태후)와 혼인하여 제16대 예종을 낳았음.
 ▶ 1095 하지만, 제15대 숙종의 즉위 과정에서 이자의의 난이 일어나며 경원 이씨는 왕의 외척이자 정적이 되었음.

□ 인종 즉위와 이자겸의 권력 장악
 ▶ 이후 이자겸의 둘째 딸이 예종의 왕비가 되어
 ▶ 1109 인종을 낳으면서, 이자겸의 정치적 지위는 높아졌음.
 ↘ 이자겸은 이허겸의 4세손(이허겸 > 이OO > 이자연 > 이호 > 이자겸)
 ▶ 1122년 예종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동생들이 왕위를 노리자, 이자겸은 우호 세력을 동원해 어린 태자 인종의 즉위를 도왔음. 
 ▶ 이후 인종은 이자겸에게 정치적으로 의존하였고,
 ▶ 정국의 중심에 선 이자겸 세력은 예종의 동생인 왕보와 한안인 등 신진 세력을 축출하였음.

□ 이자겸의 전횡
 ▶ 이자겸은 '지군국사'를 칭하고 왕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는 한편, 관직을 팔아 친척과 측근을 요직에 앉히고 척준경과 사돈을 맺어 권력 기반을 강화하였음. 
 ▶ 1124, 1125 또한 다른 가문의 외척 성장을 막기 위해 셋째·넷째 딸을 인종의 왕비로 들였음.

■ 이자겸의 난
 - 시간이 지나면서 인종은 이자겸의 권력 독점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 인종의 뜻을 받은 김찬·지녹연 등은 이자겸과 척준경 세력을 제거하려는 거사를 일으켜 궁궐 안의 이자겸 측 인물들을 공격하였음.

□ 이자겸의 난 발발
 ▶ 이 소식을 들은 이자겸과 척준경은 군사를 이끌고 궁성을 포위하고, 척준경은 궁에 불을 질렀음. 
 ▶ 궁궐이 불타고 측근들이 희생되자, 위기에 몰린 인종은 왕위를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음.
 ▶ 그러나 이자겸은 이를 거부하고 인종을 자신의 집에 가둔 채 국정을 장악했으며,
 -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사대 관계를 맺기로 결정하였음.
 - 또한 인종을 독살하려 했으나 성공하진 못했음.

□ 척준경의 이탈과 이자겸의 몰락
 ▶ 그러나 이자겸과 척준경의 관계가 틀어지자 최사전은 척준경을 설득해 인종의 편에 서게 하였고,
 ▶ 1126.5 이후 척준경이 이자겸과 그 세력을 체포하자, 인종은 이자겸 일가를 유배 보내고 두 왕비도 폐위하였음. 

■ 이후
□ 이자겸의 난이 남긴 영향
 - 이자겸의 난 이전에는 기존 문벌들이 과거 시험과 학문을 바탕으로 성장한 신진 세력을 견제하며 공동의 이해관계를 유지했지만,
 ▶ 이자겸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른 문벌과의 연대를 소홀히 하면서 문벌 귀족 사회의 공조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음. 

□ 서경 천도를 둘러싼 갈등
 ▶ 1127.3 인종은 척준경 세력을 숙청하였고,
 ▶ 1128 이후 묘청이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 천도를 주장하자, 조정은 묘청을 지지하는 세력과 김부식 등 개경 중심의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이자겸의 난]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