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109
제16대 예종과 순덕왕후
이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왕해는
▶ 1115 이후 왕태자로 책봉되었음.
■ 즉위 이후
□ 인종의 즉위와 이자겸의 권력 장악
▶ 1122년 4월
예종이 세상을 떠난 뒤,
▶ 14세의 왕해가 후계자로
정해졌지만, 예종의 동생들이 왕위를 노리면서 불안한 상황이
이어졌음.
▶ 왕해는 외할아버지 이자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고,
▶ 1122.12 이자겸은
예종의 동생 왕보와 한안인·문공미 등 유력 정치 세력을 축출하며 조정의
권력을 장악했음.
▶ 이후 이자겸은 높은 지위와 포상을
받으며 왕에 준하는 대우를 누리고, 자신의 두 딸을 인종과 혼인시켜
권력 독점을 추구했음.
□ 이자겸의 난
- 시간이 지나면서 인종은 이자겸의 권력 독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측근 김찬·지녹연 등이 이자겸 세력을
제거하려는 계획에 깊이 관여하였음.
▶ 1126.2
그러나 이 거사는 이자겸의 사돈인 척준경의 반격으로 실패했고,
척준경은 궁궐을 포위한 뒤 불을 질러
인종과 그의 세력을 제압했음.
▶ 이후 인종은 이자겸의 집에 사실상 유폐되었으나, 최사전의
조언에 따라 척준경을 회유하여 이자겸 세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음.
▶ 1127.3 이어
척준경 세력까지 숙청한 뒤, 서경에서 유신 교서를 반포하며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는 뜻을 밝힘.
□ 금나라의 성장과 고려의 대응
- 1125 여진이
세운 금나라(1115)가 거란(요)을
멸망시키며 동북아의 강자로 떠오름.
▶ 1126.3
당시 권력을 장악한 이자겸 세력 아래 고려 조정은 금에 사대하기로
결정하였음.
▶ 1127
이후 금이 (북)송의 수도까지 함락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 1129.11
고려는 결국 금과 군신 관계를 인정하며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의 글을
보내게 됨.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 1127
여진족(금나라)을 상국으로 모시게 된 상황에서 서경 출신 승려 묘청이
정지상·백수한 등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했음.
▶ 1128.8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 '금국 정벌'을 주장했음.
- 이에 조정은 묘청을 지지하는 세력과 김부식 등
개경 중심의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대립함.
▶ 인종은
서경에 대화궐을 짓고 여러 차례 행차하며 묘청 측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였으나, 실제 천도 결정은 내리지 않았음.
□ 문치 강화
- 인종은 문치에 중점을 두어 학교 제도와 과거
제도를 정비하고 경연을 활성화하였지만,
▶ 1133
예종이 설치한 국학 7재
가운데 무학재(무관 양성 기관)를 폐지하였음.
□ 묘청의 난과 진압
- 서경에 대화궐을 지었지만, 국제 정세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자연재해까지 발생하면서 묘청 세력은 점차 수세에
몰렸음.
▶ 1135.1 결국 묘청 세력은 서경에서 국호를 '대위국‘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킴.
▶ 1135 이에 인종은
김부식 등을 진압군을 보내고,
▶ 1136
서경을 완전히 평정하면서 서경 천도 운동은 끝나게 되었음.
□ ‘삼국사기’ 편찬
▶ 1145 인종의 명을 받은 김부식 등이 ‘삼국사기’를
완성하였음.
↘ 삼국사기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 사후
▶ 1146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제18대 의종이
즉위함.
□ 무신정변 발생
▶ 의종은 재위 중반 이후 향락에 빠져 환관과 측근
위주의 정치를 펼쳤음.
▶ 1170
무신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고, 결국 정중부와 이의방 등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