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서경 천도 운동


이자겸의 난 이후

묘청 세력은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 금 정벌을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음.
이후 묘청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음.

서경 천도 운동

■ 배경
□ 서경
 - 서경(지금의 평양)은 고려 건국 초기부터 개경과 함께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의 영향으로 그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었음.

□ 여진의 성장과 이자겸의 난
 - 1115 여진은 금을 건국하고, 1125 요를 멸망시키며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하였음.
 ▶ 1126.2~5 인종 측의 이자겸 제거 시도가 실패하자, 이자겸과 척준경이 궁궐을 공격해 국정을 장악하였으며, 이자겸 집권 아래 고려는 금에 사대하기로 결정하였음.

□ 인종의 개혁 정치
 ▶ 이자겸 세력이 몰락한 뒤, 인종은 왕권 회복과 개혁을 추진했고,
 ▶ 1127.3 서경에 행차하여 세금 감면·농업 장려·빈민 구제 등의 내용을 담은 ‘유신지교’를 발표하였음.
 - 한편, 묘청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사상에 능통한 승려로, 정지상의 소개를 받아 서경에서 인종을 만나게 됨.

■ 서경 천도 운동
 - 묘청·정지상·백수한 등은 서경에 왕의 기운이 있으므로 수도를 옮기면 고려가 다시 융성하고 금나라까지 굴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음. 

□ 대화궁 건설과 칭제건원 주장
 ▶ 1128.11~1129.2 인종은 묘청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서경에 대화궁(대화궐)을 건설했으며,
 ▶ 이어 묘청 세력은 인종에게 황제를 칭하고(칭제건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음.
 ▶ 인종은 여러 차례 서경에 행차하고 대화궁 안에 제사 시설인 팔성당(1131)을 설치하였지만, 묘청 등이 주장한 칭제건원과 금나라 정벌은 받아들이지 않았음. 
 - 한편, 김부식과 임원애 등은 묘청의 주장이 풍수도참에 의존한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며 반대하였음.
 ↘ 지리도참설은 풍수지리와 도참(예언)사상이 결합한 형태

□ 서경 천도 운동의 좌절
 ▶ 묘청은 서경 천도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비술을 부렸지만, 서경에서 기상이변과 재난이 잇따르자 인종은 점차 묘청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고,
 ▶ 1134 결국 인종이 서경 행차를 거부하면서 서경 천도 운동은 사실상 좌절되었음.

□ 묘청의 난
 ▶ 1135.1 서경 천도가 무산되자 묘청은 조광·유참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대위국으로 칭하며 자비령 이북의 서북 지역을 장악하였음. 
 ▶ 이에 조정은 김부식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토벌군을 편성하였음.
 ▶ 김부식은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던 정지상·백수한 등 묘청과 연계된 인물들을 처형한 뒤 서경으로 향했음.
 ▶ 반란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조광은 묘청과 유참을 죽이고 항복을 시도했으나, 조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 저항을 이어갔음.
 ▶ 1136 결국 토벌군이 서경을 함락하면서 묘청의 난은 진압되었음. 

■ 이후
 ▶ 반란 진압 후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 문벌귀족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였고, 서경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낮아졌음.

서경 천도 운동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서경천도운동]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6.24
[묘청]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