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통일신라에서는
골품제가 정치적 지위를
크게 좌우했지만, 고려에서는
과거와 관직 활동을
통한 능력도 중요해지면서 유학 교육의 비중이 커졌음.
□ 최충의 관직 진출과 유학적 권위 형성
▶ 제6대 성종
대에는 국자감이 설립되며
고려의 국립 교육 체제가 정비되었음.
▶ 1005
최충은 제7대 목종 대에
최항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 제8대 현종과 제9대 덕종,
제10대 정종 대에는
여러 관직을 거치며 고위 관료로 성장하였음.
▶ 제11대 문종
대에는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에 올라 제도 정비와 민생 안정에
이바지했음.
■ 9재 학당 설립
▶ 1055년 무렵 최충은 벼슬에서 물러난 뒤 후진 양성을 위해 자신의 집에 사립
교육 기관을 세웠고, 학생들이 많이 몰리자 이를 9재로 나누어
교육하였음.
↘ 악성재, 대중재, 성명재, 경업재, 조도재,
솔성재, 진덕재, 대화재, 대빙재
- 9재 학당은 국자감과 비슷하게 유교
경전·역사서·제술(글짓기)을 중심으로 교육하였음.
□ 사학 12도 형성
- 1068 최충이
세상을 떠난 뒤, 문종은 그에게 ‘문헌’이라는 시호를 내렸음.
▶ 이후 최충이 세운 9재 학당은 그의 시호를 따서 ‘문헌공도’라고
불리게 되었음.
▶ 그 뒤 여러 고관들이 이와 비슷한 사학을 세우면서,
문헌공도를 포함한 12개의 사학을 합쳐 ‘사학 12도’라고 불림.
↘ 사학 12도는 설립자의 시호, 호, 벼슬 이름 등을
따서 명칭이 붙여졌으며,
문헌공도·홍문공도·광헌공도·남산도·서원도·문충공도·양신공도·정경공도·충평공도·정헌공도·서시랑도·귀산도가
있음.
■ 이후
▶ 과거를
준비하던 귀족 자제들은 명망 높은 유학자의 가르침을 받고, 관직 진출에
유리한 인맥을 쌓기 위해 사학을 선호하였음.
▶ 1280
제25대 충렬왕이 국가
교육의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 사학 12도는 점차 국학에
들어가기 전 거치는 교육 과정처럼 약화되었고,
▶ 1391
고려의 마지막 왕인 제34대 공양왕 대에 폐지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