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018.8
제8대 현종과 원성태후
김씨 사이에서 왕형이 태어났음.
- 같은 해 겨울,
거란은 소배압을 앞세워
고려를 침입하였음.
▶ 1022
왕흠(9.덕종)이 태자에 책봉되었고, 왕형(10.정종)이 평양군에
봉해졌음.
□ 덕종 재위 기간
▶ 1031> 제9대 덕종
대에는 의주 보주성 일대의 영토 문제와 억류 사신 송환 문제로
거란과의 긴장이 다시 높아졌음.
■ 즉위 이후
▶ 1034.9 덕종이
세상을 떠나고, 정종이 왕위에 오름.
▶ 1034
서경과 개경에서 팔관회를 개최하고 이를 정례화하였음.
□ 거란과의 긴장 지속
- 정종 대에도 거란과의 긴장 관계는 계속
이어졌음.
▶ 1035
거란이 외교 단절의 책임을 고려에 돌리자, 고려는 책임이 거란의 영토
점유에 있다고 반박하고
▶ 1035.9
서북로 송령 동쪽에 장성을 쌓아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음.
□ 거란과의 외교 회복
▶ 1037~ 거란이
조복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고려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생겼고,
↘ 조복(阻卜)은 거란 서북쪽 초원 지역에 있던
몽골계 유목 세력
▶ 고려 내부에서도 온건파가 주도권을 잡으며
거란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한 것으로 보임.
▶ 이에
고려는 거란에 사신을 보내고 거란의 연호를 다시 사용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고,
▶ 1038 거란 사신이 고려에 와 맹약을 맺음.
□ 변방 방어 강화
- 그러나 고려는 거란과 우호 관계를 회복한
뒤에도 전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고,
▶ 1039~1044 여러 변방 지역에 성을 쌓아
천리장성을 완성하며
국방 강화를 꾸준히 추진하였음.
▶ 1040~1041 또한
지방의 용맹한 인재를 선발해 훈련하고, 병서와 신무기를 변방에
배치하였음.
▶ 1042 거란이 송을 압박하며 동북아의 강자로 부상했고, 고려와
거란은 현실적인 타협 관계를 유지하였음.
↘ 거란은 고려가 송·여진과 연결될 가능성을 경계해
지나친 압박을 피했고, 고려는 강성해진 거란과의 전쟁을 피하며 국경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실리적 타협을 선택하였음.
■ 이후
▶ 1046.4
정종은 병에 걸리자
▶ 1046년 5월
이복동생인
제11대 문종에게 국정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