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945.8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
 ▶ 1947.10
            이후 미소 공동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합의에 실패했고, 한국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됨.
 ▶ 1948
            결국 남한에는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북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짐.
□ 북한의 남침 준비
 ▶ 1948년 말 북한은
            소련제 전차와 기계화 부대를 중심으로 군사력 증강을 시작하고,
 ▶ 1949
            남한에선 주한 미군이 철수했으며, 소련제 무기와 장비가 대규모로
            북한에 밀반입됨.
 ▶ ~1950
            2차 국공내전 이후
            약 5만 명의 중국군 출신 한인들이 북한으로 귀환하고,
 ▶ 1950.5
            이어 북한과 중국, 소련은 대남 무력공격에 대한 합의를 이룸.
 ▶ 1950.6
            김일성과 스탈린은 마오쩌둥과 협의해 전쟁을 1개월 내 종결하는 남침
            전략을 수립하고,
 ▶ 1950.6
            북한은 남한에 평화통일안을 제시하는 위장 평화공세와 함께 전면공격을
            위한 모든 군사 준비를 마침.
          
            ■ 6.25 전쟁
□ 북한의 기습 침략과 서울 함락
 ▶ 6.25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전면공격을 시작했고, 한국군은 준비
              부족과 무장 열세로 급격히 붕괴됨. 
 ▶ 북한의 남침이 확인되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의 침략을 규탄하고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음.
 🐯 직후부터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일어남.
 ▶ 6.28
            북한군은 계획대로 서울을 점령했지만,
 ▶ ~7.3
            남한의 한강선 방어전으로 한국군을 포위·섬멸하는 데 실패하며 진격이
            지체됨.
 ▶ 7.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군 구성을 결정하며 최고지휘권을 미국에
            위임했고,
 ▶ 7.14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수행의 효율성을 이유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임함.
 🐯 1950.7
            노근리 학살 사건
□ 유엔군 참전과 인천 상륙 작전
 ▶ 1950.8~9
            유엔군은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부산을 거점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했음.
 ▶ 9.26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9.15)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하고, 동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38선까지 진격함.
 ↘ 당시 북한군은 병력 대부분을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고 있었음.
□ 유엔군과 남한의 북진
 ▶ 9.27 트루먼
            대통령이 중국과 소련 국경 지역에는 한국군만 진출시키는 조건으로
            미군의 38선 돌파를 승인하자,
 ▶ 10.1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시작함.
 ▶ 10.7
            이어 유엔총회는 결의안을 채택해 유엔군의 북진을 공식 승인하고,
            전쟁의 목적을 ‘한반도의 원상회복’에서 ‘군사적 승리’로 변경함.
□ 중공군의 개입
 ▶ 10.13 중국은
            유엔군의 북진에 대응해 한국전쟁에 참전을 결정하고,
 ▶ 10.19~26
            약 20만 명의 병력을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에 투입했음.
 ▶ 10.25~
            한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청천강 선까지 후퇴하게
            됨.
□ 12월 후퇴
 ▶ 11.24 유엔군
            사령부는 중국군의 개입을 소규모로 판단하고 압록강을 향해 진격작전을
            재개했지만,
 ▶ 11.25~26
            중국군이 서부전선을 강하게 공격하며 유엔군의 방어선을 붕괴시킴.
 ▶ 1950.12 이에 유엔군은 동부전선에서 흥남 철수 작전을 포함한 12월
              대규모 후퇴를 감행했고, 
 ▶ 1951.1 중국군과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다시 서울을 점령함(1.4 후퇴).
 🐯 1951.2
            거창 양민 학살 사건
□ 대치 상태
 ▶ 1951 남하하던
            중국군은 보급선의 한계와 전투 피해 누적으로 충청도 부근에서 진격을
            멈췄고,
 ▶ 1951.3
            이어 유엔군이 제한적인 반격을 감행하며 전선은 다시 38선 부근에서
            교착됐음.
 ▶ 1951.7
            38도선 부근에서 진전 없이 대치가 이어지자 미국의 제안으로 본격적인
            정전회담이 시작됨.
□ 교착 상태와 정전협정
 - 정전회담에서는 군사분계선 설정, 정전 감시,
            전쟁포로 처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의 대립이 장기화됐고,
            전선에서는 치열한 고지전이 계속됐음.
 🐯 1952.7
            발췌개헌안이 통과되어 이승만은 대통령 연임에 성공함.
 ▶ 1952~1953
            미국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당선과 소련 스탈린의 사망으로 종전 분위기가
            조성됐고,
 ▶ 1953.4
            이어 공산군 측의 요청으로 정전회담이 다시 시작됨.
 ▶ 1953.6
            유엔군과 공산군은 포로 송환 문제를 인도군을 통한 중립적 관리
            방식으로 합의했으나, 이승만 정권이 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해 회담에
            위기가 발생함.
 ▶ 1953.7
            그러나 유엔군이 한국군의 협정 준수를 보장하며 정전회담이
            재개됐고,
 ▶ 7.27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됨. 
          
            ■ 이후
 ▶ 남북
            간 적대감이 심화되며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남한은 반공 체제를
            강화했으며 북한은 김일성 중심의 독재 체제를 확립함.
 ▶ 1953.10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되어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