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 제8대 현종

왕순, 태조 왕건의 손자, 제9대 덕종의 아버지
1009년부터 1031년까지 약 23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강조의 정변으로 왕위에 오른 현종은 2·3차 고려-거란 전쟁이라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막아내고 전후 복구와 지방 제도 정비를 추진하였음.

고려 현종

■ 즉위 이전
□ 출생
 ▶ 981 제5대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경종의 왕비였던 헌정왕후는 궁을 나와 사저에서 지내게 됨.
 ▶ 992년 헌정왕후는 왕욱과의 사이에서 왕순(현종)을 낳았고, 왕욱은 이 일로 유배되었음.
 ↘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이며, 헌정왕후는 왕순을 낳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남.
 ▶ 제6대 성종은 왕순을 유모에게 맡겨 기르게 한 뒤, 이후 왕욱에게 보내 함께 살게 하였음.
 - 994 한편, 1차 고려-거란 전쟁 이후 고려와 거란은 화의를 맺고 공식 관계를 이어 갔음.

□ 천추태후의 견제와 왕순의 후계자 부상
 ▶ 996 왕순은 아버지 왕욱이 세상을 떠난 뒤 개경으로 돌아왔으나,
 ▶ 997 제7대 목종이 즉위하면서 정치적 견제를 받게 됨.
 ▶ 천추태후는 왕순을 강제로 출가시켜 숭교사에 머물게 했고, 1006 이후 신혈사로 옮겨진 왕순을 여러 차례 해치려 하였음. 
 - 1004 한편, 거란은 전연의 맹을 통해 송으로부터 매년 세폐를 받는 유리한 국제 질서를 형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에 대해서도 더욱 강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음.

 ▶ 1009 그러던 중 목종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후계 문제가 떠오름.
 - 천추태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고,
 - 이에 목종은 대량원군 왕순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그를 궁으로 불러들이며 강조에게 호위를 맡기려 하였음.

■ 즉위 이후
□ 강조의 정변과 현종의 즉위
 ▶ 강조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이미 목종을 해쳤다는 잘못된 보고를 믿고, 김치양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했음.
 ▶ 강조는 뒤늦게 목종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군사를 움직인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해 개경을 장악하고 목종과 천추태후를 폐위하였음.
 ▶ 1009년 이후 강조는 왕순을 개경으로 모셔 와 현종으로 즉위시키고 김치양 일파를 제거했으며, 목종은 유배 도중 시해하였음. 

 ▶ 1010.2 성종 대에 중단된 연등회를 부활시켰고, 1010.11 팔관회를 다시 엶.

□ 2차 고려-거란 전쟁
 - 고려와 여진 사이의 마찰이 거란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강조의 정변도 알려졌고,
 ▶ 1010년 거란 성종은 이를 빌미로 삼아 고려를 침입함.

 ▶ 강조가 거란군에 맞서 초기에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국 사로잡히면서 고려군은 크게 무너졌음.
 ▶ 이에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하였고, 피난 과정에서 지방 세력의 위협과 혼란을 겪었음. 
 ↘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초조대장경 조성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짐.
 ▶ 이후 현종은 자신의 친조를 조건으로 거란에 화친을 청했고, 거란 성종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철군하였음.
 ↘ 친조는 한 나라의 왕이 직접 다른 나라의 황제나 군주를 찾아가 예를 올리는 일

□ 전후 복구와 통치 체제 정비
 - 현종은 개경으로 돌아온 뒤 전쟁으로 불탄 궁궐을 다시 짓게 하였고,
 - 1010~1029 개경의 방어가 취약하다는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나성 축조를 추진하였음. 
 ▶ 1012 또한 장인의 수를 줄이고 이들이 농사를 짓게 하여,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와 농업 생산을 회복하려 하였음.

 ▶ 1012 현종은 12목의 절도사를 없애고 대신 5도호와 70도 안무사를 두었으며, 1018 이후 안무사를 폐지하고 지방 제도를 4도호 8목으로 다시 재편하였음.

 ▶ 1013 이어 거란과의 전쟁으로 소실된 실록을 다시 편찬하게 하였음.
 ↘ ‘7대 실록(실대사적기)’라 불렸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음.

 ▶ 1018 향리 정원제를 시행하여 향리의 수와 지위를 규정하였고,
 - ? 또한 사심관 선발 기준을 강화하여 특정 가문이 지방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였음.

□ 3차 고려-거란 전쟁
 - 현종은 병환을 이유로 강화 조건이었던 친조를 이행하지 않았음.
 - 이에 거란은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으나 고려가 거부하자, 몇 해 동안 국지전이 이어졌음.
 ▶ 1018.12 결국 거란은 소배압이 이끄는 대군을 보내 다시 고려를 침입하였음.

 ▶ 전쟁이 시작되자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거란군에게 계속 피해를 줬고, 현종도 적이 개경 인근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고 농성전을 준비하였음.
 ▶ 1019년 2월 결국 고려군은 귀주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거란군을 크게 격퇴하였고, 이후 현종이 화친을 요청하자 거란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오랜 전쟁은 끝나게 됨. 

□ 민생 안정과 제도 정비
 ▶ 1018 현종은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현화사를 크게 창건하였음.
 ▶ 1024 또한 지역 규모에 따라 과거에 응시할 향공의 수를 정하고,
 - 예부시 전에 국자감에서 미리 시험을 치르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인재 선발 과정을 정비하였음.
 - 1024 이슬람 상인들이 벽란도에 도착함.

 ▶ 1025 현종은 공사를 줄여 백성들이 농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고,
 ▶ 1028 뽕나무 심기와 말 기르는 규정을 마련해 비단 생산과 목축을 장려하였음.
 - ? 이 밖에도 토지 보유 면적에 따라 세금 제도를 조정하고, 물가가 폭등할 때 국가가 개입하도록 하였으며, 의창 제도를 정비해 백성 구제 기능을 강화하였음.

■ 사후
 ▶ 1031년 현종이 세상을 떠나고, 제9대 덕종이 즉위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현종]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