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 제5대 경종

왕주, 제4대 광종의 아들, 제6대 성종의 사촌 형
975년부터 981년까지 약 7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경종은 전시과를 시행해 국가 재정 제도의 기틀을 마련함.

고려 경종

■ 즉위 이전
 ▶ 955 광종과 대목황후 황보씨 사이에서 태어남.

□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
 ▶ 956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작으로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을 숙청하였음.
 - 경종은 어린 시절 광종의 의심(?)을 받았지만, 대목왕후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음.

 ▶ 965 11살에 정윤(태자)에 책봉되었고, 제군사와 내의령, 내사 등에도 제수되었음.
 ↘ 제군사는 병사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관직이고, 내의령은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 격의 관직

■ 즉위 이후
 ▶ 975년 광종이 세상을 떠나고, 경종이 왕위에 오름.

□ 복권정책과 부작용
 ▶ 경종은 즉위 후 광종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복권하고, 세금과 채무를 줄여 주며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 복수를 허용한 탓에 새로운 희생이 생겼고, 집정인 왕선이 천안부원군(태조의 아들)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짐.
 ▶ 이에 경종은 복수를 금지하고 집정의 권한을 나누어 권력 분산을 시도함.

□ 전시과 시행
 - 태조 왕건후삼국 통일 전쟁의 공로자에게 성품과 공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토지(역분전)를 지급했음.
 - 이후 광종 대에는 관직 체계가 정비되었고,

 ▶ 976 이를 바탕으로 경종은 관리와 군인에게 전지와 시지를 나누어 주는 (시정)전시과를 시행하였음. 
 ↘ 전시과는 공복의 색, 문반·무반·잡업의 구분, 그리고 세부 등급에 따라 토지를 차등 지급함으로써 관료의 생계를 보장하고 국가 운영의 질서를 세우려는 제도

 ▶ 경종은 국정의 주도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혼란한 정치 현실 속에서 여가와 오락에 기울었던 것으로 보임.

■ 사후
 ▶ 981년 6월 경종은 중병에 걸리자, 사촌 동생 제6대 성종(왕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경종은 왕치의 여동생인 헌애왕후(제3 왕비)와 혼인하였었는데,
 ▶ 997 헌애왕후는 아들 제7대 목종이 즉위한 뒤 섭정을 맡아 ‘천추태후’로 불림.




# 참고 자료
[경종]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