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955
광종과 대목황후 황보씨
사이에서 태어남.
□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
▶ 956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작으로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을 숙청하였음.
- 경종은
어린 시절 광종의 의심(?)을 받았지만, 대목왕후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음.
▶ 965
11살에 정윤(태자)에 책봉되었고, 제군사와 내의령, 내사 등에도
제수되었음.
↘ 제군사는 병사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관직이고, 내의령은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 격의
관직
■ 즉위 이후
▶ 975년 광종이
세상을 떠나고, 경종이 왕위에 오름.
□ 복권정책과 부작용
▶ 경종은 즉위 후 광종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복권하고,
세금과 채무를 줄여 주며 정치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 복수를 허용한 탓에 새로운 희생이 생겼고, 집정인
왕선이 천안부원군(태조의 아들)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짐.
▶ 이에
경종은 복수를 금지하고 집정의 권한을 나누어 권력 분산을 시도함.
□ 전시과 시행
-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전쟁의
공로자에게 성품과 공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토지(역분전)를
지급했음.
- 이후 광종 대에는 관직 체계가
정비되었고,
▶ 976
이를 바탕으로 경종은 관리와 군인에게 전지와 시지를 나누어 주는
(시정)전시과를
시행하였음.
↘ 전시과는 공복의 색, 문반·무반·잡업의 구분,
그리고 세부 등급에 따라 토지를 차등 지급함으로써 관료의 생계를
보장하고 국가 운영의 질서를 세우려는 제도
▶ 경종은 국정의 주도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혼란한 정치 현실 속에서 여가와 오락에 기울었던 것으로 보임.
■ 사후
▶ 981년 6월 경종은 중병에 걸리자, 사촌 동생
제6대 성종(왕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경종은 왕치의 여동생인 헌애왕후(제3
왕비)와 혼인하였었는데,
▶ 997
헌애왕후는 아들 제7대 목종이 즉위한 뒤 섭정을 맡아 ‘천추태후’로
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