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943 >
태조 왕건 사후 고려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과 군신 간 권력 다툼으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고,
- 956 >
이에 제4대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호족을 통제하며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음.
▶ 960
왕욱(태조 왕건과 신성왕후의 아들)과 선의왕후 유씨 사이에서
왕치(성종)가 태어남.
▶ 975
광종 사후 제5대 경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 981
중병에 걸리자 어린 아들 대신 사촌 동생 왕치(성종)를 후계자로 삼음.
■ 즉위 이후
▶ 981년 성종이
왕위에 오름.
□ 최승로의 ‘시무 28조’
▶ 982년 6월 성종은
5품 이상 관리들에게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올리게 했는데,
▶ 이때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려 유학적 정치 원리와 폐단
시정을 강조하였음.
▶ 982-987 >
성종은 팔관회를 중지하였지만, 불공을 올리거나 승려를 우대하는 등
불교를 배척하지는 않음.
- 이후, 송에서 대장경을
들여와(991) 이를 기념하기도
하였음.
▶ 983
원구단(환구단)을 설치하고, 태조와 천제에게 제사를 지냄.
□ 중앙 통치 체제 정비
- 성종은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여 고려의 실정에 맞게 2성 6부제로 운영하였음.
↘ 당은 중서성·문하성·상서성의 3성을 두어 국정을
운영하였음.
- 2성 가운데 중서문하성은 국정을 총괄하고
상서성은 정책 집행을 담당하였으며, 6부는
이부·병부·호부·형부·예부·공부로 구성되어 행정 실무를 맡았음.
- 또한,
송의 제도를 참고해 중추원(991)과
삼사를 도입하고,
↘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을 출납 담당하는
기구, 삼사는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
- 어사대(995)를 두어 관리를 감찰하게 하였으며, 식목도감과 도병마사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음.
↘ 식목도감은 법률과 제도를 제정하는 기구,
도병마사는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기구
- 아울러 문산계와 무산계를 중심으로 관제
개혁을 추진하였음.
□ 지방 통치 체제 정비
▶ 983년 성종은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중앙의 지방
지배력을 강화하였음.
- 또한, 지방 관청에 공해전을 지급하고 향리
조직을 호장 등으로 정비하여 지방 행정 체제를 체계화함.
↘ 공해전(공해전시과)은 관청의 운영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한 토지
▶ 986~987 이어
지방관이 가족과 함께 부임할 수 있도록 하고,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였음.
▶ 986
의창 제도를 시행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자 했음.
↘ 의창은 흉년에 농민들에게 양식을 대여하던
기관
□ 유학교육 진흥과 과거제 정비
- 986~989
성종은 향리 자제를 개경에 모아 교육하고 지방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교육을 강화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음.
▶ 992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종은 개경에
국자감을 크게 세워 중앙
교육 기관을 정비하고 유학 교육을 국가적으로
진흥하였음.
- 또한,
과거제를 거의 매년
시행하고 복시를 처음 시행하는 등 제도를 정비함.
▶ 993
곡식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개경과 지방의 주요 고을에 상평창을
설치함.
↘ 풍년에는 곡물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풀어 물가를
조절함.
□ 1차 고려 거란 전쟁과 서희의 외교 담판
- 당시 고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의
여진족과는 마찰을 빚고 있었고, 거란(요)은 송과 고려의 관계를 끊기
위해 고려를 압박하려 했음.
▶ 993년 겨울
거란이 침입하면서
1차 고려-거란 전쟁이
일어났고, 고려는 초반 전투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음.
▶ 그러나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여 거란과 화의를 맺으면서
전쟁은 마무리됨.
▶ 이후 고려는 압록강 하류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며 북방 방어선을 구축하였음.
▶ 995
12목에 절도사를 두어 군사 기능을 강화하였음.
- 나아가
전국을 10도로 나누어 지방 구역의 정비도 시도함.
■ 사후
▶ 997년
아들이 없었던 성종은 경종의 아들(목종)에게 왕위를 넘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