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로의 성장과 관직 진출
▶ 927년 신라
경주에서 태어난 최승로는 6두품 계열 가문의 후예로 추정됨.
▶ 935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해 개경으로 거처를 옮기자, 최승로의 아버지도 함께 고려로
이주하였음.
▶ 938
이후 최승로는 태조 왕건을
만나 영특함을 인정받아 상을 받고 원봉성에서 교육을 받게 됨.
↘ 원봉성은 고려 초기에 왕의 교서나 문서 작성
같은 문한 업무를 맡던 기관
▶ 최승로는 태조 말년 무렵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혜종·정종·광종·경종
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관직 생활을 이어갔음.
■ ‘오조정적평’과 ‘시무 28조’
▶ 981 성종이
즉위할 무렵, 최승로는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의 지위에 올라
있었고,
▶ 982년 6월
이듬해 성종이 5품 이상 관리들에게 시국의 과제에 대한 의견을 올리게
하자,
▶ 최승로는 ‘오조정적평’과 ‘시무 28조’를 올림.
□ 오조정적평
- ‘오조정적평’은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정치에서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평가해 교훈으로 삼도록 한
상소문으로,
- 혜종·정종·광종·경종은 초기의 협력
정치에는 공을 인정하면서도 편파 인사, 의심, 숙청, 사치 같은 문제를
비판하며 성종이 이를 경계하라고 하였음.
□ 시무 28조
- 최승로는 ‘시무 28조’에서 당시 고려가
해결해야 할 여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힘.
- 불교의 지나친 불교 행사와 사원 중심의 낭비를 억제하고
유교적 정치 이념에 따라 국정을 운영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 중국의 제도도 고려의 현실에 맞게 주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음.
- 또한, 흔들린 신분
질서와 복식 제도를 정비하고,
- 지방에 외관을
파견하여 토호의 횡포를 억제하며, 백성의 부담을 줄일 것을
건의하였음.
▶ 이후 최승로는 조정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였고,
▶ 성종은 유교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고
지방 통치를 강화해 나갔는데, 이는 최승로의 시무책과 맞닿아
있었음.
- 983
과거 시험을 주관하여
강감찬을 장원으로 선발하였음.
■ 사후
▶ 989년
63세로 세상을 떠난 뒤 태사와 대광 내사령에 추증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