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신라 쇠퇴와 후백제·후고구려의 등장
▶ 889 신라는
제51대 진성여왕 때
전국적 농민 반란이 일어나며 지방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음.
▶ 900
이 틈을 타 견훤은 후백제를
세웠고,
▶ 901
궁예는 후고구려를 건국해
후삼국 구도가 형성되었음.
□ 고려 건국 이후 신라 외교의 전환
▶ 918
왕건은 지지 세력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세웠음.
▶ 920
이어 신라 제54대 경명왕과 우호 관계를 맺었음.
▶ 924
제55대 경애왕도 즉위 후 친고려 노선을 분명히 해 양국 협력을
강화했음.
■ 재위 기간
□ 경애왕의 죽음과 경순왕의 즉위
▶ 927.9 견훤이 신라 고울부(지금의 경상북도 영천)를
공격함.
▶ 신라는 고려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 927년 11월
왕건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 견훤이 금성을 기습했고, 경애왕은 견훤의
강요로 자결함.
▶ 이어 견훤은 경애왕의 이종사촌인 김부(경순왕)를 왕으로
세웠음.
↘ 견훤은 김씨 왕통 복귀의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
▶ 경순왕은 경애왕의 장례를 치르며 반견훤 뜻을
분명히 했고, 고려와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짐.
□ 공산전투 이후 후백제의 공세 강화
▶ 927.11 왕건은
돌아가는 후백제군을 공산에서 기습하려다 오히려
대패했고(공산전투),
▶ < 929
이후 후백제는 대목군·무곡성·가은현을 잇달아 공격하며 신라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했음.
□ 고려의 세력 확장과 견훤의 망명
▶ 930년 고려가
고창전투(경상북도 안동시 일대)에서 후백제에 대승을 거두자,
▶ 경순왕이
왕건의 신라 방문을 요청하며 신라는 고려에 더 의지하게 됨.
▶ 935.3
이후 견훤은 아들들에게 축출되어 금산사에 유폐되었으나
▶ 935.6
탈출해 고려로 망명했으며, 왕건은 그를 예우하고 양주를 식읍으로
내렸음.
■ 항복 이후
□ 경순왕의 항복 결단과 고려 편입
▶ 935.10 경순왕은 신라의 자력 존속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항복을
결정하고,
↘ 경순왕은 백성의 희생을 막고자 항복을
결정함.
▶ 935.11 백관을
이끌고 금성을 떠나 개경으로 향함.
▶ 935년 11월
개경에 도착한 뒤에는 왕건의 직접 영접을 받으며 고려 체제 안에
편입됨.
- 왕건은 경순왕을 맏딸 낙랑공주와
혼인시키고, 그를 정승공에 봉했음.
↘ ‘고려사’에 따르면 935년 12월 12일 신라가
공식적으로 멸망함.
□ 경순왕의 말년
▶ 이후 경순왕은 경주 사심관에 임명되었지만, 실제 정치 권한은
경주 지역 향직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음.
- 936년 고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함.
▶ 937 경순왕은
신라 3보(황룡사 9층 목탑·황룡사 장륙상·천사옥대) 가운데 하나인
천사옥대를 왕건에게 바쳤고,
↘ 황룡사 9층 목탑과 장륙상은 고려 시기 몽골 침략
과정에서 각각 소실·분실되었고, 천사옥대는 제26대 진평왕이
옥황상제에게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행방은 모름.
▶ 978년 4월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고향 경주가 아닌 오늘날 경기도 연천에 묻힘( 연천 경순왕릉 , 사적 제2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