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신라 하대로 접어들며 왕위 계승을 둘러싼 진골
귀족의 정쟁이 거듭되었고, 그 사이 관청·귀족·사원이 농민의 토지를
차지하면서 농민층은 삶의 기반인 땅을 점차 잃어갔음.
▶ 875
제48대 경문왕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 헌강왕이 왕으로 즉위하였고,
▶ 886
이후 제49대 헌강왕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 제50대 정강왕이 왕위를
이었음.
■ 재위 기간
▶ 887 정강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유조에 따라 여동생인
진성여왕이 즉위함.
□ 재위 초반
▶ 진성여왕은 숙부 위홍의 보좌를 받아
경문왕·헌강왕·정강왕 대의 정책을 이어갔음.
↘ 경문왕의 동생 위홍은 경문왕 즉위 이후 신라의
최고위 관직을 맡아 정국 운영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음.
-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고 ‘삼대목’ 편찬을
추진했으며, 조세를 면제하고 죄인을 사면하는 조치를 시행하였음.
↘ 백고좌는 국가적 불교 행사이며, ‘삼대목’은
향가를 모은 책으로 현재 전하지 않음.
□ 위홍 사망 이후, 조정 비방 사건
▶ 888 위홍이
사망한 뒤, 왕거인 사건이 일어남.
↘ 도성에 신라 조정을 비방하는 방이 붙는 사건이
일어나 왕거인이 범인으로 지목돼 투옥되었으나, 뒤이어 천둥과 벼락의
이변이 일어나자 무죄로 방면됨.
□ 전국적 농민 반란과 호족 세력의 독립
▶ 889 국가 재정이 궁핍해진 상황에서 진성여왕이 조세 징수 강화를
시도하자, 각지의 도적 봉기는 곧 전국적 농민 반란으로
이어졌음.
▶ 889
사벌주(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에서는 ⚔️원종과 애노의 난이 일어났고,
↘ 정부가 진압에 나섰지만 봉기의 확산을 막지
못했고, 이후 반란 세력은 다른 세력에 흡수·통합되거나 점차 약화된
것으로 보임.
▶ 891 북원(지금의
강원도 원주)의 양길은
궁예를 앞세워 10여 군현을
공격했으며,
▶ 892
견훤은 완산주(지금의 전북
전주)를 거점으로 후백제를 자처해 무주 동남쪽 군현을 장악했음.
▶ 894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조를 올리자, 진성여왕은 이를
수용함.
↘ 최치원의 시무책은 현재 전하지 않음.
▶ 896 이어
적고적(붉은 바지를 입은 농민 반란군)까지 봉기하여 모량리(지금의 경주
서쪽)로 침입해 민가를 약탈했음.
■ 선위 이후
▶ 897 국정 혼란 속에서 진성여왕은 왕위를 효공왕(헌강왕의
서자)에게 선양하고
▶ 897년 12월
북궁에서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