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흥덕왕 사후 왕위 계승 분쟁과 균정계 왕통의 성립
▶ 836 제42대
흥덕왕이 세상을 떠나고, 왕위 계승전에서 승리한 제43대
희강왕(헌정계)이 즉위하였으나,
▶ 838
제44대 민애왕이 그를 자결하게 하고 왕위에 오름.
▶ 839
이어 장보고의 지원을 받은
제45대 신무왕(균정계)이 즉위하면서,
▶ 857
이후 제47대 헌안왕에 이르기까지 균정계 왕통이 이어짐.
▶ 860
화랑의 국선이었던 김응렴(헌정계)은 헌안왕의 연회에서 왕의 질문에
뛰어난 답변을 해 주목받았고,
▶ 이후 첫째 딸(영화부인
김씨)과 혼인하여 맏사위가 됨.
■ 즉위 이후
▶ 861년 1월 헌안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없던 헌안왕의 유언에
따라 김응렴이 즉위함.
- 이후, 제38대 원성왕을
추복함으로써 분열된 왕실의 화합을 도모하였음.
□ 관제 개혁
- 경문왕은 근시·문한기구를 확대하고 측근을
등용하며, 당의 제도를 모방한 관제개혁을 추진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음.
↘ 근시기구는 왕의 측근 조직이고, 문한기구는 왕의
명령을 문서로 처리하는 행정 조직
□ 유교·불교 이념을 활용한 통치 강화
▶ 863 경문왕은
국학에 행차해 물품을 하사하고 충효 중심의 유교 이념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했으며,
▶ 864
직접 감은사에 행차해 제사를 지내고
▶ 866
황룡사 연등행사에 참석해 백관을 위한 연회를 엶.
□ 재이현상과 계속된 반란
- 신라는 경문왕 대에도 이상기온과 지진, 홍수, 메뚜기 피해,
전염병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해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졌음.
▶ 866.1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문왕이 아들 김정을 태자로 책봉하자,
▶ 866.10
이를 둘러싼 왕위 계승 문제로 이찬 윤흥 등이 반역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 868
이어 이찬 김예와 김현 등도 왕족 간 경쟁 속에서 반란을 일으켰음.
- 867, 873 왕실의 진휼은 제한적인 조치에 그쳐 백성의 불만을 막지
못했으며,
▶ 874
결국 근친 왕족으로 추정되는 근종이 궁궐에 침입하는 반란을 일으킴.
■ 사후
▶ 875년 7월
경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제49대 헌강왕이 즉위함.
□ 당나귀 귀 설화
- “삼국유사”에 나오는 당나귀 귀 설화는 왕권
강화를 추진하던 경문왕이 귀족의 반발과 불안한 민심 속에서 큰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 동시에 백성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여론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 불안과 불만은 결국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음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