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라 제48대 경문왕

김응렴, 제47대 헌안왕의 사위, 제49대 헌강왕의 아버지
861년부터 875년까지 약 15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헌안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사위인 경문왕이 즉위함.
경문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분열된 왕족을 통합하고자 하였으나,
잦은 자연재해로 민심이 흔들리는 가운데 반란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였음.

경문왕

■ 즉위 이전
□ 흥덕왕 사후 왕위 계승 분쟁과 균정계 왕통의 성립
 ▶ 836 제42대 흥덕왕이 세상을 떠나고, 왕위 계승전에서 승리한 제43대 희강왕(헌정계)이 즉위하였으나,
 ▶ 838 제44대 민애왕이 그를 자결하게 하고 왕위에 오름.
 ▶ 839 이어 장보고의 지원을 받은 제45대 신무왕(균정계)이 즉위하면서,
 ▶ 857 이후 제47대 헌안왕에 이르기까지 균정계 왕통이 이어짐.

 ▶ 860 화랑의 국선이었던 김응렴(헌정계)은 헌안왕의 연회에서 왕의 질문에 뛰어난 답변을 해 주목받았고,
 ▶ 이후 첫째 딸(영화부인 김씨)과 혼인하여 맏사위가 됨.

■ 즉위 이후
 ▶ 861년 1월 헌안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이 없던 헌안왕의 유언에 따라 김응렴이 즉위함. 
 - 이후, 제38대 원성왕을 추복함으로써 분열된 왕실의 화합을 도모하였음. 

□ 관제 개혁
 - 경문왕은 근시·문한기구를 확대하고 측근을 등용하며, 당의 제도를 모방한 관제개혁을 추진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음.
 ↘ 근시기구는 왕의 측근 조직이고, 문한기구는 왕의 명령을 문서로 처리하는 행정 조직

□ 유교·불교 이념을 활용한 통치 강화
 ▶ 863 경문왕은 국학에 행차해 물품을 하사하고 충효 중심의 유교 이념을 정치에 반영하고자 했으며,
 ▶ 864 직접 감은사에 행차해 제사를 지내고
 ▶ 866 황룡사 연등행사에 참석해 백관을 위한 연회를 엶.

□ 재이현상과 계속된 반란
 - 신라는 경문왕 대에도 이상기온과 지진, 홍수, 메뚜기 피해, 전염병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해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졌음. 

 ▶ 866.1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문왕이 아들 김정을 태자로 책봉하자,
 ▶ 866.10 이를 둘러싼 왕위 계승 문제로 이찬 윤흥 등이 반역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 868 이어 이찬 김예와 김현 등도 왕족 간 경쟁 속에서 반란을 일으켰음.
 - 867, 873 왕실의 진휼은 제한적인 조치에 그쳐 백성의 불만을 막지 못했으며, 
 ▶ 874 결국 근친 왕족으로 추정되는 근종이 궁궐에 침입하는 반란을 일으킴.

■ 사후
 ▶ 875년 7월 경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제49대 헌강왕이 즉위함.

□ 당나귀 귀 설화
 - “삼국유사”에 나오는 당나귀 귀 설화는 왕권 강화를 추진하던 경문왕이 귀족의 반발과 불안한 민심 속에서 큰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으며,
 - 동시에 백성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여론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 불안과 불만은 결국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음을 상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