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나제동맹


434년부터 533년까지

고구려의 남진이 가속화되자 이에 신라와 백제는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나제동맹을 체결함.
이후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밀어내자, 나제 양국은 서로 원병을 보내며 고구려의 공세를 저지하였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 고구려의 세력이 약해지자, 신라와 백제는 그 틈을 타 한강 유역을 공동 점령하였음.
하지만 신라가 한강 하류를 선점하면서 동맹 관계가 무너졌고, 결국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이 전사함으로써 한반도 남부의 세력 질서가 새롭게 재편됨.

나제동맹

■ 배경
□ 4C 후반의 삼국
 ▶ 371 백제 근초고왕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켜 고구려의 남방 진출을 저지하였고,
 ▶ 381 전후 신라는 내물마립간 대 진한 전역을 통합하여 고구려와 함께 전진에 사신을 파견하였음.
 ▶ 392 이어 고구려 광개토왕은 한강 유역을 공격하며 백제를 압박함.

□ 삼국의 외교 관계
 ▶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가야·왜·신라와의 연합을 추진했으나, 신라는 가야와의 경쟁으로 백제 대신 고구려를 선택함.
 ▶ 이에 백제·가야·왜 연합군이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실성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며 외교 관계를 강화했음.

□ 고구려의 신라 구원
 ▶ 399 가야·왜 연합군이 신라를 공격하자, 내물마립간은 광개토왕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고,
 ▶ 400 광개토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 왕성을 포위한 왜군을 격파하고 가야 지역까지 진격함.
 ▶ 이후 신라는 낙동강 동쪽의 가야 세력까지 영향권에 두며 고구려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고,
 - 고구려는 한반도 남부 진출을 본격화하여 신라를 종속적 동맹·보호 관계로 형성하고, 군사를 주둔시켜 남부 지역을 통제하며 신라의 국정에도 관여하였음.

 ▶ 417 신라 눌지마립간은 고구려의 지원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자주적 왕권 확립을 추진함.

■ 나제 동맹
 ▶ 427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본격적인 남진정책과 실질적 영토 확장을 뜻하는 결정으로, 이에 백제를 비롯한 남부 세력들이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됨. 

□ 동맹의 형성
 ▶ 434년 백제가 신라에 좋은 말과 흰 매를 보내 화친을 제안하자, 신라는 황금과 명주를 보내 이에 응함. 
 ▶ 이에 고구려 장수왕은 눌지마립간을 우벌성으로 불러 회맹 의식을 열고 관복을 하사하며 견제와 유화를 병행함.

 ▶ 450 고구려 장수가 실직(현 강원도 삼척시)에서 사냥 중 신라 하슬라 성주의 공격으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 장수왕은 눌지마립간에게 강하게 항의하였고, 눌지마립간이 사죄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음.
 ▶ 그러나 이후 눌지마립간은 고구려에 대한 반격을 결심함.

□ 실질적 작동
 ▶ 눌지마립간은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 정병을 몰살시키는 작전을 실행하여 양국은 완전히 결별하고 적대 관계로 돌아서게 됨. 
 ▶ 454 이에 고구려가 신라 북쪽 변경을 침입했고,
 ▶ 455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신라가 군대를 보내 백제를 지원함.

 ▶ 468 고구려가 말갈 병력과 함께 신라 실직성을 공격함.
 ▶ 470 신라는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충청북도 보은 일대에  삼년산성(사적 235호) 을 축조함.
 ↘ 삼년산성은 고구려군이 충주에서 괴산 방면으로 우회해 신라로 진입하는 길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 시설

□ 고구려의 한강 유역 확보
 -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에 대응해 북위와 왜에 협력을 요청했으나, 북위가 고구려와 우호 관계였기에 성사되지 않았고, 이를 알게 된 장수왕은 백제 정벌을 추진함.

 ▶ 475년 가을 장수왕은 백제의 내부 사정을 파악한 뒤 한성을 함락시키고, 도주하던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아 살해함. 
 - 개로왕의 동생(아들?) 문주는 신라에 구원을 요청해 1만의 병력을 이끌고 한성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함락된 뒤였고, 남은 세력을 모아 웅진으로 옮겨 백제를 재건했으나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손에 넘어갔음.

□ 나제동맹의 대응
 ▶ 480 고구려가 말갈 병력을 동원해 신라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고,
 ▶ 481 고구려·말갈 연합군은 동해안을 따라 포항 흥해 일대까지 진격하였음. 그러나 백제와 가야의 구원군이 신라군과 합세해 고구려군을 격퇴하였고,
 ▶ 484 이후 고구려가 다시 신라 북쪽을 침략했으나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이 이를 물리침.

□ 나제동맹의 강화
 ▶ 493 백제 동성왕이 신라에 혼인을 요청하여 이벌찬 비지의 딸과 혼인함.
 - 신라 왕녀가 백제 왕비가 되면서 나제동맹은 왕실 간 혼인에 기반을 둔 동맹으로 발전하게 됨. 

 ▶ 494 살수(남한강 지류로 추정)에서 고구려군과 싸우던 신라군이 위기에 처하자 백제 동성왕이 군사를 보내 구원하였고,
 ▶ 495 고구려가 백제 변경을 공격하자 신라 소지마립간이 군사를 보내 백제를 지원하고 고구려군을 물리침.

 ▶ 고구려의 남진이 어려워지자, 백제는 한강 유역 상실의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된 기반을 마련하였고, 신라 역시 체제를 정비하며 성장함.

□ 신라와 백제의 반격
 ▶ 신라는 진흥왕 대 고구려와 중원(현 충청북도 충주) 일대에서 대치하게 되었음.
 ▶ 551년 신라 진흥왕백제 성왕은 고구려가 약해진 틈을 타 한강 유역을 점령함. 

□ 신라의 배신
 - 신라와 백제는 한강 상류는 신라가, 하류는 백제가 차지하기로 약속했으나,
 ▶ 553년 신라가 동맹을 깨고 한강 하류까지 점령하면서 나제동맹이 해체됨. 
 ▶ 554 이에 분노한 백제 성왕은 가야의 군대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고, 양국의 군대는 관산성에서 맞붙었음.
 ▶ 그러나 전투 중 성왕이 신라군에게 붙잡혀 전사하면서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나버림.

■ 이후
 ▶ 신라는 한강 하류 유역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상황에 놓임.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나제동맹]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