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313~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면서 백제와 고구려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었음.
▶ 344
백제 12대 계왕이 왕위에 오름.
■ 재위 기간
▶ 346년 근초고왕이 왕위에 오름.
- 백제 왕계를 이원적으로 볼 때, 이전까지는
왕위가 고이계와 초고계로 번갈아 계승되었으나 근초고왕 이후에는
초고계 직계로 단선 계승되었으며,
- 이를 통해
왕권이 안정되어 왕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대외 정복의 기반을
마련하게 됨.
□ 전반기
- 재위 전반의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체제 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됨.
- 또한,
박사 고흥으로 하여금 ‘서기’를 편찬하게 하여 왕실의 정통성과 왕권을
유교적 이념으로 정당화하였음.
↘ ‘서기’는 백제 최초의 역사서로 현재는 전하지
않음.
□ 남쪽 지역 안정화
▶ 369 근초고왕은
왜군과 함께 가야 7국을 정복한 뒤
▶ 전남 해안으로
비정되는 침미다례와 주변 4읍까지 진출함.
↘ ‘삼국사기’는 마한 통합을 1대 온조왕 대의 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엔 근초고왕 대에 마한 정복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됨.
▶ 이를 통해 백제는 남부를 안정적으로 지배하여 북방 진출의
기반을 마련함.
□ 고구려와의 충돌
▶ 369
고국원왕이 치양(황해도
백천)을 공격했으나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격퇴했고,
▶ 371
이어 패하(황해북도 예성강) 전투에서 매복으로 고구려군을 크게
무찔러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음.
▶ 이 승리로 백제는 대방과 낙랑 일부 지역을
장악하며 북방으로 세력을 넓혔음.
□ 외교 활동
▶ 372 정월 백제가
동진에 사신을 파견하자,
↘ 같은 시기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제작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추정함.
▶ 372 6월 동진은 근초고왕을 진동장군 영낙랑태수로 책봉하며 공식 외교
관계가 성립하였음.
↘ 이전까지는 마한이 독자적으로 중국에 사신을
보냈으나, 이후에는 백제가 외교를 주도하게 됨.
- 근초고왕 시기의 백제와 왜의 관계는
문화·학문·군사 전반에서 연결되어 있었음.
■ 이후
▶ 375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나고 14대 근수구왕이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