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삼국 시대의 시작
□ 신라 쇠퇴와 후백제·후고구려의 등장
▶ 889 신라는
제51대 진성여왕 때
전국적 농민 반란이 일어나며 지방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음.
▶ 900
이 틈을 타 견훤은 후백제를
세웠고,
▶ 901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며
후삼국 구도가 형성되었음.
□ 고려와 후백제의 대립
▶ 918년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뒤, 후백제와 우호 관계를 유지했음.
▶ 925.10
그러나 조물성 전투에서 양국이 대립했고, 이후 화친을 맺으며 인질을
교환했음.
▶ 926.4
그런데 고려에 인질로 머물던 견훤의 사위가 병으로 죽자, 견훤은 이를
타살로 받아들였음.
▶ 이에 견훤은 후백제에 있던 고려
측 인질(왕건의 사촌 동생)을 죽이며 두 나라는 적대 관계로 돌아섬.
□ 발해 멸망
- 926년 발해
멸망 이후, 왕건은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발해 세자 대광현에게 왕씨
성을 내려 종실로 편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우대하였음.
□ 공산전투 이후 후백제의 공세 강화
▶ 927.9 견훤이
신라 고울부을 공격하자, 신라는 고려에 구원을 요청했음.
▶ 927.11
그러나 왕건의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견훤이 금성을 기습해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옹립함.
▶ 927.11
이후 왕건은 퇴각하던 후백제군을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에서
기습하려 했으나, 오히려 크게 패했음.
▶ 이후
후백제는 신라를 강하게 압박하며 신라의 영토를 잠식해 갔음.
▶ 927
먼저 대목군(지금의 경상북도 칠곡)을 공격했고,
▶ 928
대야성(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에는 군사를 주둔시켰음.
▶ 928.10
이어 무곡성(지금의 대구광역시 군위군)과
▶ 929.10
가은현(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까지 잇달아 공격했음.
■ 고려가 후삼국의 주도권을 가져감
□ 고창 전투 이후 고려의 우세 확립
▶ 930년 견훤이 군사를 일으켰지만, 왕건은 고창 전투(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에서 후백제를 크게 격파했음. 이 패배를 계기로 후백제의 국력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전쟁의
주도권도 고려로 넘어갔음.
▶ 전투 이후 안동·청송
일대의 30여 군현이 고려에 항복했으며,
▶ 나아가
명주에서 흥례부에 이르는 110여 성도 잇따라 고려에 항복했음.
▶ 934
이어 왕건이 운주(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에서 다시 후백제를 크게
무찌르자, 인근 30개 군현이 추가로 고려에 항복했음.
□ 후백제 정변 이후 견훤의 망명
▶ 935.3 견훤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켜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신검을 새 왕으로
세움.
▶ 935.6 이후 견훤은 금산사에서 탈출해 나주로 향한 뒤 고려에
항복하자, 왕건은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음.
□ 신라의 멸망
▶ 935.10 경순왕은 신라의
자력 존속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항복을 결정하고,
▶ 935년 11월
개경에 도착하여 왕건의 영접을 받으며 고려 체제 안에 편입됨.
↘ 경순왕은 나라를 지킬 형세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해 백성의 희생을 막고자 항복을 결정함.
□ 후백제의 멸망
▶ 936.6 왕건은
견훤의 후백제 정벌 요청을 받아들여
▶ 936.9
대군을 이끌고 일리천(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일대)으로 직접 진격함.
↘ 이 전투에는 견훤도 고려 측으로 참전했으며,
후백제 장군 효봉·덕술·애술·명길은 개전 전에 고려 진영으로 넘어와
견훤에게 항복함.
▶ 936.9 이어진 전투에서 후백제가 크게 패하면서, 고려는 마침내
후삼국 통일을 완성함.
■ 이후
▶ 936.12~940
왕건은 후삼국 통일을 기념해 후백제의 옛 영역인 논산에 개태사를
창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