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1948년 9월 9일

광복 직후 소련은 한반도 북부에서 간접통치를 하며 공산 세력을 지원하고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함.
유엔의 남북 총선거 제안을 거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움.
이후 김일성 1인 체제를 확립하고, 오늘날까지 세습을 이어가고 있음.

■ 이전
□ 소련군의 진주
 ▶ 1945.2 얄타회담에서 소련은 연합국과 대일전 참전을 약속함.
 ▶ 1945.5 소련은 “반봉건사회 → 인민민주주의 → 사회주의”라는 발전 단계를 설정하고, 동유럽과 북한 등 친소 국가에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적용하고자 했음.
 ↘ 인민민주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민족자본가 등이 연합한 사회주의 전 단계의 포괄적 정치체제

 ▶ 1945.8 소련군이 한반도 북부에 진입한 뒤, 함흥과 평양을 점령하며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냄.

□ 소련의 한반도 정책
 ▶ 1945.8 서울에서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조직되고, 곧이어 전국에 지부들이 조직됨.

 ▶ 소련군은 일본의 행정체제를 유지하려 했지만, 함남 건준 등 조선인 단체 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선인 자치조직에 행정권을 이양함. 
 ▶ 1945.9 소련은 직접적인 소련 군정을 실시하지 않고, 친 소련 정부는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함.
 -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함께 참여하는 자치조직을 구성해 이를 인민위원회로 개편하며 점차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고자 했음.

□ 초기 정당 조직
 ▶ 1945.9 1925 조선공산당 일원이었던 박헌영 등이 조선공산당을 재건함.
 ▶ 1945.9~ 김일성은 보천보 전투(1937)와 훙치허 전투(1940)로 알려진 인물로 소련 대위 군복을 입고 원산 도착하여
 ▶ 1945.10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조직을 주장함.
 -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만주파(동북 항일연군 출신)와 소련에서 파견된 고려인 지식인들(소련계)이 주요 구성원으로 같은 해 12월 김일성은 제1일 책임비서로 선출됨.

 ▶ 1945.11 민족 자본가, 기독교인 등을 기반으로 한 중도 우익 정당인 조선민주당이 창설됨.
 - 1945.12 곧이어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을 두고 정치 세력 간 대립이 발생하며
 ▶ 신탁통치 반대를 말하던 조선민주당은 와해되어 친공산주의 세력으로 재편됨.

 ▶ 1946.2 중국공산당과 함께 항일투쟁을 벌인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연안계)은 북조선신민당을 결성하고, 38선 이남에 대표를 파견하여 남조선신민당을 이끎.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946년 초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북조선공산당’으로 불리기 시작함.

□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인민민주주의 체제 구축
 ▶ 1946.2 김일성을 중심으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되어 토지개혁과 법령 공포를 통해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함. 
 ↘ 입법·행정·사법 권한을 모두 행사하는 사실상 북한 내 최고 통치기관
 - 1946.3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함으로써, 지주-소작제를 해체하고 농촌 사회를 새롭게 재편하였으며, 이를 통해 농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함.
 - 1946.6~7 노동법령과 남녀평등권 법령을 통해 노동자 중심의 사회 질서와 성 평등에 기반한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으며, 이는 남녀 모두를 ‘신국가 건설’의 주체로 삼으려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보여줌.
 - 1946.8 중요산업 국유화 법령을 통해 국가가 중화학 및 경공업 등 주요 산업을 직접 운영하며,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공업화의 기초를 마련함.

□ 1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과 북조선인민위원회 출범
 - 1946.3~5 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어 남한에서 정읍 발언을 계기로 단독정부 수립 논의가 본격화됨.

 ▶ 1946.8 북조선공산당(김일성 등)과 북조선신민당(연안계)이 합당하여 ‘북조선노동당’이 되고,
 - 1946.11 조선공산당(박헌영 등)은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과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됨.

 ▶ 1946.11~1947.3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여(1946.7) 각급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고,
 ▶ 1947.2 이를 통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공식 출범함.

□ 2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과 남북 협상 결렬
 - 1947.5~10 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유엔은 남북총선거를 제안했지만 무산됨. 

 ▶ 1948.3 북한에서 김구와 김규식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를 제안함.
 ↘ 북한은 이를 통해 통일정부 수립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했으며,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 이용
 ▶ 1948.4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예비회의가 열렸고 김구와 김규식이 대표로 참석함.
 ▶ 1948.5 그러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남한 대표들은 서울로 돌아옴.
 ▶ 1948.8 이어 남한에서 5.10 총선거를 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함.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 1948.8 북한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남북을 포함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여(남한의 선거는 비밀 지하선거로 시행) 572명의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위원을 선출함.
 ▶ 1948.9 이어 내각을 임명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공식 선포함. 

■ 이후
 ▶ 1949.6 북조선노동당은 남조선노동당과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이 됨.
 ▶ 1950~1953 6.25 전쟁을 일으켜 남한을 무력으로 통일하려 했으나, 장기전으로 번지며 실패함.

 ▶ 1953 소련계 허가이가 김일성과의 권력 갈등 속에 숙청되고,
 ▶ 1953~ 박헌영을 비롯한 남조선노동당 계열 인사들도 간첩 혐의로 제거됨.
 ▶ 1956~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연안계 인사들이 대거 숙청되며, 김일성 1인 체제가 확립됨.

 ▶ 1994.7 김일성이 사망하고, 세습 체제로서 김정일 정권이 출범함.
 ▶ 2011.12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여 3대 세습 체제를 이룸.




# 참고 자료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북한 정권의 탄생]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