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919.3
러시아 혁명(1917) 이후 코민테른이 창립되어 사회주의가 세계로 확산되고,
- 3.1 운동
이후 민족운동이 한계에 부딪히자, 진보적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사회주의를
민족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임.
□ 사회주의 계보
- 서울공산단체(1919)와 마르크스주의 크루조크(1920.3)는
재일공산주의자 단체로 발전함. → 북풍파
- 1920
조선공산당은 꼬르뷰로 내지부 결성(1923)
후 1925 조선공산당에 참가함. → 화요파
- 신아동맹단에서
출발한 김철수의 사회혁명당(1920.6)은
상하이 고려공산당과 연결됨. → 상하이파
- 김사국의
사회혁명당(1921)은 고려공산동맹으로
이어짐. → 서울파
▶ 1921
상하이와 이르쿠츠크에서 각각
고려공산당이
조직되었으나,
자유시 사변 등으로
분열됨.
▶ 1922
코민테른이 꼬르뷰로를 설치하고 내지부를 통해 사회주의 분파를
통합하려 했지만,
▶ 1924.4
화요파와 북풍파의 대립으로 내지부는 해체됨.
▶ 1924.5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공산당 재건 준비가 있었지만, 국내
사회주의자들은 독자적 당 창설을 추진함.
- 화요파·서울파·북풍파
등이 참여한 '13인회'는 결렬되었고, 이후 각 파는 따로 당 창당 준비에
나섬.
■ 1925 조선 공산당
▶ 1925.4
서울에서 화요파를 중심으로 북풍파와 상해파 인물들(꼬르뷰로 내지부
시기 야체이카 대표)이 모여 조선공산당을 창당함.
- 기관지 발행, 전국 순회강연 등 선전활동과
노동조합 창설, 학생운동 조직에 관여함.
▶ 1925.11 신의주 사건으로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대적 탄압이 벌어져 간부들이 체포됨.
□
2차 지도부
▶ 2차 지도부가 구성되어 조직을
재정비함.
▶ 1926
순종 승하 이후,
조선공산당은 6.10 만세운동을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 6.7~
약 3개월간 대규모 탄압을 받아 당원 대부분이 체포됨.
□ 3차
지도부
▶ 1926.9
검거를 피한 인원들은 당을 재정비하고, 고려공산동맹과 통합해 새
지도부를 구성함.
▶ 1926.12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2차 당 대회 개최
- 여성·노동·농민운동
등 여러 사회운동 방침과
신간회 결성(1927.2)으로 이어지는 민족운동 방향도 논의함.
▶ 당 대회 후 엠엘파가 당의 주도권을 공식적으로
장악함.
↘ 엠엘(ML)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공산주의 분파
▶ 일제의 탄압 속에서 지도부가 잇따라 교체되지만,
조직 확대와 재정비를 시도함.
▶ 1928.2
일제의 조선공산당 탄압 사건으로 간부들이 체포했으나, 3차 당대회는
개최됨.
□ 4차 지도부
▶ 1928.3
3차 당대회로 4차 지도부가 출범함.
- 대부분
새로운 세대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연이은 탄압으로 약화된 당 조직을
재건함.
- 4차 지도부는 혁명적 인민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신간회 활동을 전개함.
▶ 1928.6
기관지 책임자가 체포되자 지도부는 당 해산을 결정했지만,
▶ 1928.7~10 간부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해체됨.
■ 이후
▶ 1928
코민테른의 '12월 테제'는 지식인 중심에서 벗어나 노동자·농민 중심의
당으로 재편할 것을 제시함.
▶ 1929~
엠엘파, 화요파, 이재유그룹 등이 각지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해체됨.
□ 광복, 이후
▶ 1945.8.15
서울 장안빌딩에서 서울파·화요파·상하이파·엠엘파 인사들이 모여
‘장안파 공산당’을 조직함.
▶ 8.20
그러나 경성콤그룹 출신들이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하자
이들과 합류하여,
▶ 9.11 1945 조선공산당이 공식적으로 재건됨.
▶ 1946.11
조선공산당은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과 합당해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