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910
            😈경술국치 이후, 대종교
            신도들은 북간도에 지부를 설치하고, 
 ▶ 1911 서일(31)을
            중심으로 중광단을 조직함.
 ▶ 1919 3.1 운동 
 ▶ 1919.5 대종교
            신도들과 공교회 등이 연합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함.
 ↘ 공교회는 유교를 신앙적 형태로 조직한
              단체
 ▶ 독립운동 단체들은
            파리 강화회의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자, 무장 노선을 중시함.
 ▶ 1919.8
            대한정의단 산하에 군정회를 조직하여
            신민회 계통 김좌진을
            초빙하자, 공교회가 이탈함.
 - 신민회는 공화정을
            지향하고, 공교회는 군주정을 지향함.
 ▶ 1919.9 대한민국 임시정부
              통합 
 ▶ 1919.10
            대한정의단과 군정회를 대한군정부로 개편하고, 임시정부 산하
            군사기관으로 공인을 신청하여
 ▶ 1919.12 대한군정서(별칭, 북로군정서)로 명칭을 변경함. 
          
            ■ 북로군정서
 - 서일(39)은 총재부에서 관내 전반적인 일을
            지휘하고, 김좌진(31)은 사령부에서 군사 활동을 준비함.
 - 구역
            주민들과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러시아 지역에서 무기를
            구매함.
 ↘ 러시아 내전에서 철수하는 체코슬로바키아군과
              러시아 귀화 한국인을 통해 무기를 구매
□ 간부 양성
 ▶ 1920.2
            김좌진은
            신흥무관학교의 도움을
            받아 독립군을 조직하고, 사관연성소를 설립함.
 ▶ 1920.7 기관총 중대와 정보·치안 조직을 가진 만주 지역 최대 독립운동
              단체가 됨. 
 ▶ 1920.9 1회
            사관연성소 졸업식 이후 근거지를 옮김.
 - 졸업생
            중 200여 명은 교성대(연성대)로 편성되어 청산리 대첩의 주역이 됨.
□
            훈춘사건
 -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투쟁이
            활발해지자, 일본은 ‘간도 지방 불령선인 초토 계획’을 세우고,
 ▶ 1920.9~10
            두 차례 훈춘사건을 일으킴.
 - 일제는 자작극을
            일으켜 일본인 보호를 명분으로 삼고, 만주에 2만여 명의 정규군을
            투입함.
□ 간도참변과 청산리대첩
 ▶ 1920.10.9~
            간도참변
 ▶ 1920.10
            북로군정서가 청산리 부근으로 이동하자, 일군은 이를 추적하여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연합부대를 포위함.
 ▶ 1920.10.21~26
             🏹청산리 대첩에서 일군을 기습 섬멸하지만,
 ▶ ~1920.11
            일군은 만주 지방 한인들을 학살함.
          
            ■ 이후
 ▶ 1920.12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단체들은 일제에 대항하고자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러시아령으로 이동함. 
 ↘ 대한독립군, 대한국민회, 대한신민회, 도독부,
              의군부, 혈성단 등
 ▶ 1921.6 자유시 사변 - 러시아 적군의 공격으로 독립군은 희생당하고 무장
            해제됨.
 ▶ 1922.8
            북만주로 돌아온 서일과 김좌진 등은 독립군 부대를 재조직함.
 ▶ 1924.3김좌진(36)이 대한군정서를 조직하고,
 ▶ 1925.3
            대한군정서는 신민부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