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백제는 신라에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대가야까지 멸망하면서
점차 고립되었음.
▶ 598
이후 27대 위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28대 혜왕이 즉위하였고,
▶ 599
혜왕의 뒤를 이어 29대 법왕이 왕위에 오름.
■ 재위 기간
▶ 600년 법왕이
세상을 떠나고, 무왕이 즉위함.
□ 왕권 강화
▶ 602 귀족 세력이
주도한 아막성 전투에서 신라에 크게 패배하자,
▶ 무왕은 이를 계기로 친왕 세력을 등용해 왕권을
강화했음.
▶ 또한 좌평을 6좌평제로 개편하고 22부의 행정 책임자로
임명하여 중앙 정치 구조를 국왕 중심으로 재편함.
□ 고구려를 견제
▶ 607 무왕은 수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했으나, 이를 알게 된 고구려가 백제를
공격하였음.
▶ 611
이후 무왕은 수 양제의 고구려 원정 계획에 맞춰 군기를 청했지만,
▶ 612
실제 전쟁에서는 별다른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
□ 신라와 대립
▶ 624 무왕은
속함성을 비롯한 여섯 개 성을 공격해 점령하며 소백산맥 동쪽
지역으로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였음.
▶ 또한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가잠성을 세 차례 공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 627
웅진성에 군을 주둔시키고 한강 유역 회복을 다시 시도했으나, 신라가
당에 지원을 요청하고 당의 조서가 전달되자 공격을 중단함.
□ 익산 천도설
- 익산에는 무왕과 관련된
익산 왕궁리 유적 (사적 제408호),
익산 제석사지 (사적 제405호),
익산 쌍릉 (사적
제87호) 등 여러 유적이 남아 있는데,
▶ 무왕이 익산으로의 천도를 추진했으나 실제로는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임.
□ 강화된 왕권
▶ 630 무왕은
사비의 궁궐을 수리하고
▶ 631
장자인 의자를 태자로 책봉하여 왕위 계승을 분명히 하였음.
▶ 631
또한 백제가 수의 국서를 탈취해 왜와의 관계가 악화되자(608), 이를 회복하기 위해 손자 풍장을 왜에 인질로 보냈음.
↘ 이후 풍장은 백제 멸망 후 부흥군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귀국함.
□ 왕흥사와 미륵사 창건
▶ 634 무왕은
위덕왕 때 세워진 왕흥사를 다시 지어 완공하였으며( 부여 왕흥사지 , 사적 제427호),
- 634
궁남지( 부여 궁남지 , 사적 제135호)를 조성하였음.
▶ 639년 이어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인 미륵사( 익산 미륵사지 , 사적 제150호)를 창건함.
□ 서동 설화
▶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은 연못의 용과 과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 마를 캐며 살았기 때문에
‘서동’이라 불렸음.
▶ 서동은 ‘서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고, 결국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혼인함.
▶ 신통한 재능으로 진평왕의 신임을
얻은 서동은 덕 있는 인물로 여겨져 인심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백제의
왕이 됨.
▶ 이후, 무왕과 왕비는 용화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난 일을 계기로 미륵사를 세운 것으로 전해짐.
▶ 하지만,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봉안기에서 미륵사를 창건한 건
백제의 사택왕후로 나옴.
■ 사후
▶ 641
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의자왕이 즉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