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수나라의 중국 통일
▶ 4~5C 고구려는
제19대 광개토왕과
제20대 장수왕 대에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음.
▶ 6C
이후 수나라가 진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하자 국제 정세가
바뀌었고,
↘ 수나라의 통일은 중원 중심 질서를 재형성하며
주변 국가를 복속하려는 흐름을 만들었고, 고구려는 기존의 독자적
질서를 지키려 했기에 양측의 충돌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했음.
-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가 말갈·거란을 거느리고
수 사신을 고립시킨 행동 등을 비판하며, 고구려를 굴복시키는 일이 진을
멸망시킨 것보다 더 쉽다고 경고함.
□ 우호 관계를 유지
▶ 590 고구려
제26대 영양왕이 즉위하여
▶ 591
사신을 보내 책봉을 요청하자 수 문제는 이를 받아들여 양국은 겉으로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 수나라의 팽창 정책이
강화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은 점차 고조되었음.
□ 1차 고구려-수 전쟁
- 수 문제는 거란과 말갈을 끌어들이며 동북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요서 지역은 그 핵심 거점임.
▶ 598.2
이를 그대로 두면 압박이 커질 것을 우려한 영양왕은 고구려군과
말갈병을 동원해 요서 지역을 선제공격했으나 영주 총관에게 막혔음.
▶ 이에
수나라 문제는 30만 대군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육군은 홍수로 보급이
끊기고 전염병이 퍼졌으며 수군도 표류 끝에 철수해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음.
▶ 이후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했고, 문제도 이를 받아들여 양국의 긴장이 잠시 누그러짐.
■ 2차 고구려-수 전쟁
□ 2차 전쟁의 배경
▶ 604 수 양제가
즉위하여 순행을 통한 대외 팽창정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 607.8
돌궐을 방문했다가 계민가한의 장막에서 고구려 사신과 마주치게 됨.
↘ 고구려 사신은 수를 견제하기 위해 돌궐과 협력을
논의하러 온 것이었고, 계민가한은 이를 숨기지 않음으로써 돌궐이
수와 고구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임.
▶ 양제는 고구려 왕이 직접 입조하지 않으면
침공하겠다며 강하게 압박했지만, 영양왕은 이를 거부함.
□ 2차 전쟁의 시작
▶ 612.1 양제는 113만여 명의 군사와 그 두 배의 보급 인력을 동원하여
직접 고구려 원정에 나섬.
- 조서를 통해 고구려가 본래 중국의 땅을
되돌려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조서 수령 거부, 입조 회피, 거란·말갈과의
연계, 요서 침범, 조공로 차단 등을 이유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함.
□ 요동성 공략 실패
▶ 612.2 수나라
군대는 요하를 건너 고구려 공략을 시작했지만
↘ 양제는 모든 지휘 결정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군의 대응이 지체되었고, 고구려는 그 사이 방어를 정비해 요동성을
지켜냈음.
▶ 612.6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발이 묶임.
- 수나라 수군은 패수를 거슬러 올라 평양을
노렸지만, 협공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진격했다가 고구려군의 유인
전술에 휘말려 거의 전멸함.
□ 평양 방면 진출 시도
- 수나라 육군은 평양을 노리고 압록강 서쪽에
집결했지만, 긴 원정과 과도한 군량·무기 부담으로 군사들이 지쳐 많은
이들이 군량을 버린 탓에 도착할 무렵 이미 식량이 바닥남.
▶ 이
시점에 을지문덕은 항복을 가장하고 적진에 들어가 정보를 파악하고
돌아왔음.
↘ 을지문덕은 고구려에 대승을 수나라엔 대패를
안겨주었지만, 정확한 출신과 생애는 기록 부족으로 알 수 없음.
▶ 을지문덕은 일부러 패하면서 후퇴해 적을 지치게 하고 안쪽으로
유인함.
▶ 수나라 군대는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잦은 전투와 군량 부족 속에 사기와 체력이 크게
소모되었음.
▶ 이후 을지문덕이 시와 거짓 항복으로
퇴각 명분을 던지자 우중문은 더는 평양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철군을 결정함.
□ 살수대첩
▶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전력을 총동원해 되돌아가는
수나라 군대를 추격했음.
▶ 612년 7월 수군이 살수에 도착해 절반 정도가 강을 건넜을 때, 매복해
있던 고구려군이 기습을 감행하여 약 30만 병력 중 2,700여 명만이
요동성까지 돌아갔을 정도로 수나라에 엄청난 대패를
안겨주었음.
■ 이후
□ 3차 고구려-수 전쟁
▶ 613.4 수 양제는
장수들에게 재량을 맡기고 신성과 요동성을 차례로 공략하게 함.
▶ 그러나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이 포위되자, 원정을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시켰음.
□ 4차 고구려-수 전쟁
▶ 614.2 다시
대군을 동원해 침공을 재개한 수군은 비사성까지 진격함.
▶ 이에
영양왕은 소모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했고, 이전 전쟁에서 투항했던 곡사정을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전쟁을
마무리했음.
□ 수나라의 멸망
▶ 양제는 세 차례의 대고구려 원정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거대한 토목 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해 전국적인 반란을
불러왔고,
▶ 618
양제의 이종사촌이 이연이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