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살수대첩


612년 7월

수 양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요동성 공략에 실패함.
을지문덕은 수의 군대를 평양 근처까지 유인해 식량 고갈과 피로를 극대화한 후,
살수에서 적군을 기습하여 거의 궤멸시킴.

살수대첩

■ 이전
□ 수나라의 중국 통일
 ▶ 4~5C 고구려는 제19대 광개토왕제20대 장수왕 대에 영토를 크게 확장하며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음.
 ▶ 6C 이후 수나라가 진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하자 국제 정세가 바뀌었고,
 ↘ 수나라의 통일은 중원 중심 질서를 재형성하며 주변 국가를 복속하려는 흐름을 만들었고, 고구려는 기존의 독자적 질서를 지키려 했기에 양측의 충돌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했음.
 -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가 말갈·거란을 거느리고 수 사신을 고립시킨 행동 등을 비판하며, 고구려를 굴복시키는 일이 진을 멸망시킨 것보다 더 쉽다고 경고함.

□ 우호 관계를 유지
 ▶ 590 고구려 제26대 영양왕이 즉위하여
 ▶ 591 사신을 보내 책봉을 요청하자 수 문제는 이를 받아들여 양국은 겉으로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 수나라의 팽창 정책이 강화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은 점차 고조되었음.

□ 1차 고구려-수 전쟁
 - 수 문제는 거란과 말갈을 끌어들이며 동북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고, 요서 지역은 그 핵심 거점임.
 ▶ 598.2 이를 그대로 두면 압박이 커질 것을 우려한 영양왕은 고구려군과 말갈병을 동원해 요서 지역을 선제공격했으나 영주 총관에게 막혔음.
 ▶ 이에 수나라 문제는 30만 대군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육군은 홍수로 보급이 끊기고 전염병이 퍼졌으며 수군도 표류 끝에 철수해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음.
 ▶ 이후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화의를 요청했고, 문제도 이를 받아들여 양국의 긴장이 잠시 누그러짐.

■ 2차 고구려-수 전쟁
□ 2차 전쟁의 배경
 ▶ 604 수 양제가 즉위하여 순행을 통한 대외 팽창정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 607.8 돌궐을 방문했다가 계민가한의 장막에서 고구려 사신과 마주치게 됨.
 ↘ 고구려 사신은 수를 견제하기 위해 돌궐과 협력을 논의하러 온 것이었고, 계민가한은 이를 숨기지 않음으로써 돌궐이 수와 고구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보임.
 ▶ 양제는 고구려 왕이 직접 입조하지 않으면 침공하겠다며 강하게 압박했지만, 영양왕은 이를 거부함.

□ 2차 전쟁의 시작
 ▶ 612.1 양제는 113만여 명의 군사와 그 두 배의 보급 인력을 동원하여 직접 고구려 원정에 나섬. 
 - 조서를 통해 고구려가 본래 중국의 땅을 되돌려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조서 수령 거부, 입조 회피, 거란·말갈과의 연계, 요서 침범, 조공로 차단 등을 이유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함.

□ 요동성 공략 실패
 ▶ 612.2 수나라 군대는 요하를 건너 고구려 공략을 시작했지만
 ↘ 양제는 모든 지휘 결정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군의 대응이 지체되었고, 고구려는 그 사이 방어를 정비해 요동성을 지켜냈음.
 ▶ 612.6 요동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발이 묶임. 
 - 수나라 수군은 패수를 거슬러 올라 평양을 노렸지만, 협공을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진격했다가 고구려군의 유인 전술에 휘말려 거의 전멸함.

□ 평양 방면 진출 시도
 - 수나라 육군은 평양을 노리고 압록강 서쪽에 집결했지만, 긴 원정과 과도한 군량·무기 부담으로 군사들이 지쳐 많은 이들이 군량을 버린 탓에 도착할 무렵 이미 식량이 바닥남.

 ▶ 이 시점에 을지문덕은 항복을 가장하고 적진에 들어가 정보를 파악하고 돌아왔음.
 ↘ 을지문덕은 고구려에 대승을 수나라엔 대패를 안겨주었지만, 정확한 출신과 생애는 기록 부족으로 알 수 없음.
 ▶ 을지문덕은 일부러 패하면서 후퇴해 적을 지치게 하고 안쪽으로 유인함. 
 ▶ 수나라 군대는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잦은 전투와 군량 부족 속에 사기와 체력이 크게 소모되었음.
 ▶ 이후 을지문덕이 시와 거짓 항복으로 퇴각 명분을 던지자 우중문은 더는 평양을 함락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철군을 결정함.

□ 살수대첩
 ▶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전력을 총동원해 되돌아가는 수나라 군대를 추격했음.
 ▶ 612년 7월 수군이 살수에 도착해 절반 정도가 강을 건넜을 때, 매복해 있던 고구려군이 기습을 감행하여 약 30만 병력 중 2,700여 명만이 요동성까지 돌아갔을 정도로 수나라에 엄청난 대패를 안겨주었음. 

■ 이후
□ 3차 고구려-수 전쟁
 ▶ 613.4 수 양제는 장수들에게 재량을 맡기고 신성과 요동성을 차례로 공략하게 함.
 ▶ 그러나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켜 낙양이 포위되자, 원정을 중단하고 군대를 철수시켰음.

□ 4차 고구려-수 전쟁
 ▶ 614.2 다시 대군을 동원해 침공을 재개한 수군은 비사성까지 진격함.
 ▶ 이에 영양왕은 소모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요청했고, 이전 전쟁에서 투항했던 곡사정을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전쟁을 마무리했음.

□ 수나라의 멸망
 ▶ 양제는 세 차례의 대고구려 원정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거대한 토목 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해 전국적인 반란을 불러왔고,
 ▶ 618 양제의 이종사촌이 이연이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세움.

살수대첩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등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고구려·수 전쟁]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21
[살수대첩]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21
[을지문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