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백제 27대 위덕왕

여창, 창(창왕), 26대 성왕의 아들, 28대 혜왕의 형
554년부터 598년까지 약 45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성왕이 전사한 뒤 혼란 속에서 즉위한 위덕왕은
성왕 추복하는 사업을 추진하여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강화하고,
남조와 북조, 수나라, 왜 등과의 적극 외교 관계를 펼침.

위덕왕

■ 즉위 이전
 ▶ 525 성왕의 큰아들로 태어남.

□ 관산성 전투
 ▶ 551 백제 성왕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하류를 차지했으나,
 ▶ 553 신라의 급습으로 상실했고, 태자 여창은 원로 반대를 무릅쓰고 관산성에 보루를 쌓아 보복전을 준비했으나,
 ▶ 554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하였음.

■ 재위 기간
 ▶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탈출해 돌아온 태자 여창이 왕위에 오름.

□ 약화된 왕권
 ▶ 554, 561 위덕왕은 부왕의 복수를 내세워 신라를 공격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 555 관산성 패전의 책임을 지고 출가를 결심했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출가 대신 100명의 도승을 허락하고 공덕재를 열었음.
 ▶ 555 또한 동생 혜를 왜에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추진하였음.

□ 성왕을 기리는 추복 사업
 ▶ 567 위덕왕은 성왕의 유해를 부여 능산리에 안치하고 그 주변에 국가 규모의 능사(부여 능산리 사지)를 세움. 
 - 여동생 공주가 사리를 봉안했으며, 이는 성왕계 왕족이 주도한 것으로 보임.
 ▶ 이를 통해 성왕의 권위를 계승하고 왕권을 재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함.

□ 외교를 통한 왕권 강화
 - 위덕왕은 남조 진에 사신을 보내 기존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 570~572 북조 북제와도 매년 책봉·조공 관계를 맺으며 외교를 강화하였음. 
 ↘ 백제는 주로 남조와 교류해 왔으나,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북조와도 외교 관계를 확대함.
 ▶ 575 또한, 왜에 사신을 파견하여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함.

 ▶ 577 북조에서 새로 등장한 북주(북제 멸망)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 동시에 왜에 불상과 불경을 전하고 승려와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교류를 더욱 강화하였음. 
 - 한편 백제는 이 시기에 신라에 대한 공격을 다시 시작함.

 ▶ 581 수가 건국되자, 백제는 가장 먼저 축하 사절을 보내며 외교 관계를 맺었고,
 ▶ 589 이후 수가 중국을 통일하자, 백제는 수와의 외교를 한층 더 강화하였음.
 ▶ 598 또한 수가 고구려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백제는 군도의 역할을 자청하며 고구려를 견제하려 했지만, 
 ▶ 이 때문에 고구려의 공격을 받게 됨.

■ 이후
 ▶ 598 위덕왕이 세상을 떠나고, 동생 혜왕이 즉위함.

□ 위덕왕의 아들
 -  부여 왕흥사지 (사적 제427호)에서 발견된 청동 사리함에 일찍 사망한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 ‘일본서기’에 따르면 위덕왕의 아들 아좌태자가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좌태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인 ‘쇼토쿠 태자와 두 왕자상’을 그렸다고 전해짐.

 ▶ 1993  부여 능산리 사지 (능사, 사적 434호)에서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와  석조사리감 (국보 제 288호)이 발견됨.




# 참고 자료
[위덕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