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 제7대 목종

왕송, 제5대 경종의 아들, 제6대 성종의 조카
997년부터 1009년까지 약 13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목종은 천추태후의 섭정 아래 국정을 운영하였고,
전시과 개편과 북방 방어 강화 등을 추진하였으나, 강조의 정변으로 폐위되었음.

고려 목종

■ 즉위 이전
 ▶ 980년 5월 제5대 경종과 헌애왕태후 황보씨 사이에서 왕송이 태어남.

 ▶ 981.6 경종은 심한 병에 걸리자,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사촌 동생인 제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이후 헌애왕태후 황보씨가 김치양과 가까워지자 이를 둘러싼 추문이 퍼졌고, 성종은 김치양을 유배 보냈음.

■ 즉위 이후
□ 천추태후의 섭정과 김치양
 ▶ 997년 10월 아들이 없던 성종은 병이 들자, 왕송(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목종이 즉위하자 어머니 헌애왕태후가 섭정하였으며, 헌애왕태후는 김치양을 다시 불러 관직을 주었음. 
 ↘ 헌애왕태후는 천추전에 머물렀기에 천추태후로 불림.

□ 서경 중시와 제도 정비
 ▶ 998.7 목종은 서경의 이름을 ‘호경’으로 바꾸고 여러 차례 행차하였는데,
 - 이는 태조 때부터 이어진 서경 중시 정책과 연결되며, 한편으로는 천추태후와 황보씨 세력의 정치적 기반 확대와 관련된 것으로도 해석됨.

 ▶ 998 목종은 전시과를 개편하여 문무 관리뿐 아니라 향리·군인 등에게도 토지를 지급하는 체계를 정비하였음. 
 ▶ 1000~1008 또한 북방 요충지의 성을 새로 쌓거나 수리하며 방어 체계를 강화하였음.
 ▶ 1003 교육 면에서는 박사와 사장 등의 교육 인력을 점검하고, 재주와 학식이 있는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였음.
 ▶ 1005 아울러 지방관 제도를 정비하여 주요 지방관직만 남기고 일부 관직을 폐지하였음.

□ 강조의 정변과 폐위
 -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다고 전해짐.

 ▶ 목종이 병들자, 그는 대량원군 왕순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음.
 - 목종은 왕순에게 밀지를 전하고, 서북면순검사 강조를 불러 자신의 편으로 삼으려 했음.
 ▶ 1009 하지만 강조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이미 목종을 해쳤다는 잘못된 보고를 믿고 군사를 일으켰음
 ▶ 강조는 뒤늦게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님을 알았으나, 이미 군사를 움직인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보고 개경을 장악하였음.
 ▶ 결국 강조는 목종과 천추태후를 폐위하고, 왕순(제8대 현종)을 왕으로 세움. 

■ 사후
 ▶ 1009년 폐위된 목종은 유배 도중 강조에 의해 시해됨.




# 참고 자료
[목종]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