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980년 5월
제5대 경종과 헌애왕태후
황보씨 사이에서 왕송이 태어남.
▶ 981.6
경종은 심한 병에 걸리자,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사촌
동생인 제6대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이후 헌애왕태후 황보씨가
김치양과 가까워지자 이를 둘러싼 추문이 퍼졌고, 성종은 김치양을 유배
보냈음.
■ 즉위 이후
□ 천추태후의 섭정과 김치양
▶ 997년 10월
아들이 없던 성종은 병이 들자, 왕송(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음.
- 목종이 즉위하자 어머니 헌애왕태후가 섭정하였으며,
헌애왕태후는 김치양을 다시 불러 관직을 주었음.
↘ 헌애왕태후는 천추전에 머물렀기에 천추태후로
불림.
□ 서경 중시와 제도 정비
▶ 998.7 목종은
서경의 이름을 ‘호경’으로 바꾸고 여러 차례 행차하였는데,
- 이는
태조 때부터 이어진 서경 중시 정책과 연결되며, 한편으로는 천추태후와
황보씨 세력의 정치적 기반 확대와 관련된 것으로도 해석됨.
▶ 998 목종은 전시과를
개편하여 문무 관리뿐 아니라 향리·군인 등에게도 토지를 지급하는
체계를 정비하였음.
▶ 1000~1008 또한
북방 요충지의 성을 새로 쌓거나 수리하며 방어 체계를 강화하였음.
▶ 1003
교육 면에서는 박사와 사장 등의 교육 인력을 점검하고, 재주와 학식이
있는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였음.
▶ 1005
아울러 지방관 제도를 정비하여 주요 지방관직만 남기고 일부 관직을
폐지하였음.
□ 강조의 정변과 폐위
-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였다고 전해짐.
▶ 목종이
병들자, 그는 대량원군 왕순을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음.
- 목종은
왕순에게 밀지를 전하고, 서북면순검사 강조를 불러 자신의 편으로
삼으려 했음.
▶ 1009 하지만 강조는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이미 목종을 해쳤다는
잘못된 보고를 믿고
군사를 일으켰음.
▶ 강조는 뒤늦게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님을 알았으나,
이미 군사를 움직인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보고 개경을 장악하였음.
▶ 결국 강조는 목종과 천추태후를 폐위하고, 왕순(제8대 현종)을 왕으로 세움.
■ 사후
▶ 1009년
폐위된 목종은 유배 도중 강조에 의해 시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