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919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 1920.10
일제는 간도참변을
일으켜 독립군 근거지를 파괴하고 한인을 학살함.
- 여기에
중국 군벌의 탄압과 마적단의 약탈까지 겹쳐 만주의 한인사회는 생존조차
위협받음.
▶ 1922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무너진 기반을 재건하고자 대한통군부를
조직했고, 이를 확대하여
통의부를 결성함.
▶ 그러나
통의부 내부에서 공화파와 복벽파 간의 갈등이 발생해 복벽파는 의군부로
분리되고,
▶ 이어 내부 분열과 충돌에 실망한 의용군이
참의부에 합류하며
통의부는 분열됨.
- 만주 지역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중심 방침에 실망해 창조파와 개조파로 갈라졌으며,
▶ 1923 국민대표회의에서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함.
■ 정의부
▶ 국민대표회의 결렬 후 만주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독립군 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전만통일회주비회를 조직하고,
▶ 1924.10
본 회의를 열었으나 회의 과정에서 일부 단체들의 견해 차이로
이탈함.
▶ 1924.11
결국 남은 8개 단체 대표가 독립운동 연합단체인 정의부를
결성하고,
↘ 군정서, 길림주민회, 대한광정단, 대한독립군단,
대한통의부 등
- 독립 달성을 위해 경제·산업·교육 발전에
힘쓰겠다는 원칙과 구체적인 조직 및 운영 방침을 제시함.
▶ 1925.3
정의부는 중앙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 남만주에
지방조직을 두어 한인사회를 담당하며 자치정부의 역할을 수행함.
- 공동농업과
농촌조합 등 농업 진흥사업을 펼치고, 교육기관과 언론 매체를
설립함.
▶ 1925.3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탄핵
▶ 1925.7
임시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정의부는 이상룡이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추선되자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고,
- 결국
중앙행정위원회(행정부)와 중앙의회(입법부)가 와해됨.
↘ 이상룡은 정의부 소속으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며, 같은 해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으로
취임함.
▶ 1926.1 이를
수습하기 위해 군민대표회를 열어 헌장을 개정하여 중앙행정위원을
선출하고,
- 무장 항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국내 진입 유격전과 만주 내 일본 기관 파괴 등을 수행함.
- 성립
초기엔 민정 중심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10월 민정으로 복귀됨.
□
민족유일당 운동
▶ 1926.3~12
양기탁 등이 민족유일당을 이루기 위해 고려혁명당을 조직했으나
해체됨.
▶ 1926.10
북경에서 한국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창립되어 단체 합작을 논의하지만,
-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와
‘전민족유일당조직협의회’로 분열되고,
- 정의부는
'협의회'를 지지하며 전민족유일당협의회를 주도함.
▶ 1928.9 정의부는 참의부, 신민부와 함께 3부 통일회의를 개최하여
통합을 추진하였고,
▶ 1929.4 이후
정의부와 신민부의 민정파,
그리고 참의부의 일부 세력이 합류하여 국민부를 결성함.
▶ 정의부의
활동은 이후 국민부로 이어지며 민정 중심의 독립운동을 지속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