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신민부


1920년대

북만주 독립군의 통합으로 결성된 준정부 성격의 항일단체로, 민정과 군정을 병행함.
이후 군정파와 민정파로 분열되어 국민부와 한족총연합회로 나뉨.

■ 이전
 ▶ 1919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되어 활발히 활동하자,
 ▶ 1920.10 일본군은 이를 탄압하며 간도참변을 자행함.

 ▶ 이에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여 러시아령으로 이동했으나,
 ▶ 1921 자유시 사변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일부는 만주로 돌아와 재기를 시도함.

 ▶ 1922 북만주에서는 대한독립군단을 재조직하고, 남만주에서는 통의부가 결성되는 등 독립군 통합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지만,
 - 대한독립군단은 중국 당국의 탄압과 사회주의 계열과의 갈등을 겪음.

■ 신민부
 ▶ 3.10 북만주의 항일 독립단체를 통합하기 위한 신민부 창립대회가 열리고,
 ▶ 3.15 이어 대한독립군정서와 대한독립군단 등 여러 단체 대표가 신민부 성립을 선언함. 
 ↘ 대한독립군정서는 북로군정서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
 - 삼권분립 체제를 구축하여 북만주 한인사회를 관할하는 준정부 활동을 했으며,
 -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호(민국)를 사용하여 공화주의를 표방하고, 좌우 협동전선을 시도함.

□ 민정 활동과 군정 활동
 - 중앙 민정 부서를 두어 한인들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공농제·군구제·둔전제 등을 시행함.
 - 소학교·강습소 설립을 통해 교육과 문맹 퇴치에 힘쓰고, 기관지를 발행함.

 -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고, 친일세력 척결과 유격전을 통한 무장투쟁, 군자금 모집 등을 수행함.

□ 분열
 ▶ 신민부 주요 간부들이 일본 경찰과 중국군에게 체포됨.
 ▶ 1927.12 이에 총회를 열지만 군정파는 무장투쟁 강화를, 민정파는 교육과 산업 진흥을 통한 한인 사회 발전을 주장하며 대립하다 결국 분열됨. 

 ▶ 1928.9 3부 통일회의에 민정파 대표만 참가하자, 군정파가 이를 부정함.
 ▶ 1928.11 ‘빈주사건’으로 군정파와 민정파의 대립이 심화됨.
 ↘ 빈주에서 군정파가 관할지역 한인들의 회의를 민정파의 비밀 모임으로 오해하고 무력으로 공격

 ▶ 1929 이후 민정파는 국민부에, 군정파는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하여 각자 새로운 통합 조직을 구성함. 




# 참고 자료
[신민부]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