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정동행성

정동행중서성

정동행성은 원(몽골)이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시작되어 상설 기구로 자리 잡았음.
원의 내정 간섭과 입성책동의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공민왕의 반원 개혁으로 기능이 축소되었음.


증치행성(增置行省): 원이 정동행성에 관리를 추가로 파견하여 고려의 내정에 직접 개입하려 한 조치.
입성책동(立省策動): 고려를 원의 일반적인 지방 행성과 같은 체제로 편입하여 직접 지배하려 한 움직임.

정동행성

■ 배경
□ 고려·몽골 강화와 원의 영향력 확대
 ▶ 1259 약 30년간 이어진 고려·몽골 전쟁은 강화로 마무리되었으나,
 - 몽골은 고려 영토에 쌍성총관부(1258)·동녕부(1270)·탐라총관부(1273>)를 설치하여 일부 지역을 직접 지배하였음.

□ 일본 원정과 부원 세력의 횡포
 ▶ 1273 삼별초의 저항이 끝나고,
 ▶ 1274 이듬해 원종의 뒤를 이어 제25대 충렬왕이 즉위하였음.
 - 이 시기 대표적인 부원배 흔도와 홍차구는 고려 왕의 권위를 훼손하며 군권 남용과 약탈을 일삼았고, 충렬왕도 이들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하였음.

■ 정동행성
□ 정동행성의 설치와 충렬왕의 대응
 ▶ 1280년 8월 원은 2차 일본 원정을 준비하며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흔도와 홍차구를 우승에 임명하였음. 
 ↘ 당시 몽골은 정복지에 ’행성‘을 설치했는데, 이는 현재 중국의 지방 단위인 ’○○성‘의 시초가 됨.
 ▶ 1280.10 이에 충렬왕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정동행성 좌승상을 자청하였고, 이후 우승상으로 승진하였음.
 ▶ 1282.1 그러나 일본 원정이 다시 실패하면서 정동행성은 폐지되었으며,
 ▶ 이후 군사적 필요성에 따라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였음.

□ 정동행성의 상설화와 고려의 자치 유지
 ▶ 1287.5 충렬왕이 행상서성평장정사에 임명되면서 정동행성이 다시 설치되었고, 이후 상설 관청으로 변화하게 됨. 
 - 정동행성은 주로 고려와 원 사이의 외교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고려 왕이 승상을 겸하고 고려의 내정은 기존 관부가 담당하였음.

□ 고려의 정치적 갈등과 원의 내정 간섭(증치행성)
 ▶ 1298.1 충선왕이 즉위하여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으나,
 ▶ 1298.8 개혁에 대한 반발과 조비 무고 사건 등으로 폐위되고 충렬왕이 복위하였음.
 ▶ 1299 이후 한희유 무고 사건으로 양측의 대립이 이어지자,
 ▶ 원은 활리길사 등을 정동행성에 파견하여 고려 내정에 개입하였음. 

 ▶ 이에 고려는 세조구제 등을 근거로 반발하였고, 결국 활리길사가 파면되면서 원의 직접 통치 시도는 중단되었음.
 ↘ 세조구제는 원 세조 쿠빌라이가 고려의 기존 제도와 풍속을 유지하고, 고려 왕조의 존속을 인정하기로 한 약속.

□ 입성책동과 고려 왕권의 위협
 ▶ 원의 일부 관료들은 고려를 원의 지방 행정체제로 편입하려는 입성책동을 추진하였음(1~2차). 
 ▶ 이후 고려 국왕과 대립하는 세력들이 왕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입성책동을 추진하였음(3~6차).

□ 기씨 일가의 성장과 정동행성 장악
 ▶ 1340 고려 출신 기씨가 원 황제의 제2황후로 책봉되면서 기씨 일가가 원 황실의 외척으로 성장하였음.
 ▶ 1343 이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7차 입성책동을 주도하였으며, 
 ▶ 1343 충혜왕이 폐위되자 정동행성을 장악하여 고려 국왕의 정치적 권한을 제약하였음.
 ↘ 정동행성의 사법 기구인 ’이문소’는 고려 관료와 백성을 불법 고문·수탈하던 핵심 기구로 악명이 높았음.

■ 이후
□ 공민왕의 반원 개혁과 정동행성의 쇠퇴
 ▶ 1356 제31대 공민왕은 반원 개혁을 추진하여 기철 등 부원세력을 제거하고, 좌우사를 제외한 정동행성의 소속 관부들을 폐지하였음. 
 ▶ 이후 정동행성의 역할도 점차 축소되었음.

 ▶ 1368 명군이 원의 수도 대도를 점령하면서 원은 북쪽으로 물러났고,
 ▶ 1388 이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거쳐 정동행성은 자연스럽게 폐지된 것으로 추정됨.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정동행성]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