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131 명종은
제17대 인종과 공예태후
임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음.
▶ 1146
인종이 세상을 떠난 뒤 맏형
제18대 의종이 왕위에
올랐고,
▶ 1148
명종은 익양후에 봉해졌음.
▶ 1157
이후 의종과 갈등을 빚던 둘째 형 대령후 왕경은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천안으로 유배되었음.
■ 즉위 이후
□ 무신정권 아래의 명종
▶ 1170년
정중부·이고·이의방 등은
무신정변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왕위에 올렸음.
↘ 당시 정중부는 정3품의 상장군이었고, 이고와
이의방은 정8품의 산원이었음. 정중부는 고위 무신으로서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고, 이고와 이의방은 왕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며 현장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
▶ 이후 정변의 주도자들은 파격적으로 승진하며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고, 명종은 무신들의 눈치를 보며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음.
□ 무신 집권자의 잇따른 교체
▶ 정변을 주도한 이고와 이의방은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하였으며,
▶ 1171
이고가 반역을 꾀한 사실이 발각되자 이의방이 그를 제거하였음.
▶ 1174
이후 이의방은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게 살해되었고,
▶ 1179
정중부 일가도 경대승에게 제거되면서 몰락하였음.
▶ 1183
경대승이 죽은 뒤에는 이의민이 정권을 장악하였음.
□ 정치적 한계
▶ 이후 명종은 인사권이 강화되어 자신의 세력을
만들려 했으나 측근과 환관을 통한 부정 인사로 정치적 혼란과 부패를
키웠음.
■ 폐위 이후
□ 최충헌의 집권과 명종의 폐위
▶ 1196 이의민마저
최충헌·최충수 형제에게 제거되면서 무신정권의 주도권은 최씨 형제에게
넘어갔음.
▶ 1197년 9월 최충헌·최충수 형제는 명종의 무원칙한 국정 운영과 측근들의
권력 남용, 재정 낭비를 명분으로 명종을 폐위하였으며,
▶ 명종은 창락궁에 연금되고 태자 왕도는 강화도로
추방되었고, 명종의 동생 신종이 왕위에 오름.
□ 폐위된 명종의 최후
▶ 1202.9 폐위된
명종은 이질에 걸렸으나 치료를 거부하였고,
▶ 1202.11
결국 창락궁에서 생을 마감하였음.
- 최충헌의
반대로 왕의 예에 미치지 못하는 격식으로 장례가 치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