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당의 팽창 정책
- 612 >
고구려-수 전쟁의 실패로
수나라가 흔들리는 가운데
▶ 618
양제가 죽자, 태원유수 이연(고조)이 당을 세웠고,
▶ 626
이어 그의 둘째 아들 이세민이 형제들을 제거한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
▶ 630 이후
당 태종이 된 이세민은 동돌궐을 제압하고 중앙아시아까지 영향력을
확장함.
▶ 631
당 태종은 고구려가 고구려-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해 세운 경관을
허물라고 압박했고,
↘ 경관(京觀)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적군 전사자의
시신을 모아 쌓아 만든 승전 기념물
▶ 이에 위협을 느낀 고구려는 천리장성 축조에
나섬.
↘ 천리장성은 랴오허강(요하)을 따라 북쪽의
부여성에서 남쪽의 비사성까지 이어 놓은 장성
▶ 635~640 당
태종은 토욕혼과 고창국을 정복하여 서쪽 지역을 평정하고,
▶ 641
이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내부 정세를 탐지하게 함.
□ 연개소문의 정변
- 642.8 백제가
대야성 전투에서
승리하자 신라는 큰 위기에 놓였고,
▶ 642년 10월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한 뒤
보장왕을 세우며 막리지로 올라 실권을 장악했음.
▶ 신라는 먼저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당에 구원을 청했고,
▶ 644
당은 고구려에 신라 공격 중단을 요구하며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연개소문은 이를 거부함.
▶ 644
고구려는 요하(랴오허)를 넘어 영주를 선제공격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고,
▶ 644.11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명분으로 삼아 이적과 장량을 앞세워 본격적인
고구려 정벌 준비에 착수함.
■ 1차 고구려-당 전쟁
□ 천리장성 방어선 붕괴
- 645년 이적과
장량은 각각 부대를 이끌고, 태종은 6군을 거느려 고구려로 진군함.
▶ 645.4
이적의 부대 요하를 건너 현도성과 개모성을 차례로 점령한 뒤
요동성으로 이동했으며,
▶ 645.5
태종의 본대가 도착하자 합류하여 요동성과 백암성을 차례로
함락시킴.
- 한편, 해로로 이동한 장량의 부대는
요동(랴오둥)반도 남단의 비사성을 점령함.
▶ 현도성·개모성·요동성·백암성·비사성이 잇따라 무너지며
천리장성 방어선은 붕괴됐음.
□ 주필산 전투
▶ 645.6 당군이 안시성 앞에 진을 치자 고정의·고연수·고혜진이 이끄는
고구려군 15만이 구원에 나섰으나, 당군의 반격에 휘말려
대패하였고,
▶ 고연수와 고혜진이 항복하면서 주필산 전투는 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됨.
□ 안시성 전투
▶ 645년 7월 이어 당군은 안시성을 거듭 공격했지만, 안시성과 건안성이
끝까지 저항하며 당군의 평양 진격을 저지함.
- 그 사이 설연타(터키계 유목 민족)에서는
진주가한 사후 발작이 다미가한으로 즉위하며 내분을 수습했고,
▶ 세력을
회복한 설연타가 북방에서 당을 압박하자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중단함.
■ 이후
▶ 646
당은 북쪽의 설연타를 무너뜨리고 철륵을 비롯한 여러 유목 세력을
복속시켰고,
▶ 647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완공하여 요동의 연속적 방어 거점망 구축함.
▶ 648년
신라는 당과
군사 동맹을 체결했고,
▶ 649 당
태종의 뒤를 이은 고종은 신라의 제안을 받아 백제를 먼저 공격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함.
▶ 660
그 결과 나당연합군의 대공세가 전개되었고, 결국
백제는 멸망하게 됨.
□ 2차 고구려-당 전쟁
▶ 661 당 고종은
여러 부대를 나누어 압록강 하류에서 요동의 고구려군을 차단하고,
평양성을 포위하여 두 전선을 단절시킴.
- 하지만
철륵이 반란을 일으키고 거란의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요동 방면의 당군이
철수하자,
▶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던 당군은 고구려
깊숙한 지역에서 고립된 처지에 놓임.
▶ 662.2
이때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평양성 일대의 당군을 공격해 승리를
거뒀음.
□ 3차 고구려-당 전쟁
▶ 666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장남이 당에 투항해 북방 성들이 당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 666.12
연개소문의 동생이 12성을 이끌고 신라에 귀부하면서 고구려 남방 전선이
무너짐.
▶ 당군은 신성, 부여성 등을 비롯한 북서
요충지를 차례로 함락한 뒤 압록강을 넘어 청천강 일대까지 장악했고,
- 신라군도
사천에서 승리하며 당과 합류해 평양성을 한 달 넘게 포위했음.
▶ 668년 9월
결국 군사 책임자가 나당연합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면서
평양성은 함락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