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626
당 태종 이세민은 즉위 후 서방 지역을 안정시키며 국력을 강화했고,
▶ 642년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보장왕을 형식적 군주로
세우며 정권을 장악함.
□ 1차 고구려-당 전쟁
▶ 645 당 태종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요동 방어선을 무너뜨렸지만, 고구려는 안시성과 건안성을 끝까지 지켜
당의 평양 진격을 저지했음.
▶ 그 사이 세력을 회복한
설연타가 북방에서 당을 압박하자, 태종은 결국 고구려 원정을 철수함.
■ 2차 고구려-당 전쟁
□ 당 태종 사망
▶ 646 당은 북쪽의
설연타를 무너뜨리고 철륵 등 여러 유목 세력을 복속시킨 뒤,
▶ 647
고구려를 압박하기 위해 소규모 전투를 이어가며 새로운 대규모 원정을
준비했음.
▶ 648년
신라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은 가운데
▶ 649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고종이 즉위하자 전쟁은 잠시 멈추었고,
▶ 이후
고종은 신라의 제안을 받아 고구려보다 먼저 백제를 공격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함.
□ 당의 진격
▶ 660 나당연합군의
공세로 백제가 멸망한
뒤,
▶ 661.5 당
고종은 군을 분산해 다시 고구려 정벌에 나섰음.
▶ 661.8
한 부대는 대동강까지 진격해 평양성을 포위했고,
▶ 661.9
다른 부대는 압록강 하류에 상륙해 요동의 병력과 한반도의 고구려군을
분리했음.
□ 철군
▶ 하지만 철륵이 반란을 일으키고 거란의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요동 방면의 당군은 차례로 철수하였음.
▶ 그
결과 평양성을 포위하던 당군은 고구려 영내 깊숙한 곳에서 고립된
상황에 놓이게 됨.
▶ 662.1
평양성을 포위하던 당군은 군량이 부족해지자 신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보급을 받은 뒤 철수를 시작했음.
▶ 662.2
이때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평양성 주변의 당군을 기습했고,
▶ 고구려가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쟁은 다시 잠시 소강기에 접어듦.
■ 3차 고구려-당 전쟁
□ 고구려 지배층의 내분
▶ 666년 연개소문이 죽자 장남 연남생이 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이어받았지만, 부재중에 동생들이 평양성에서 정변을
일으켰음.
▶ 666.6 연남생은
이에 대응했지만 세력의 한계를 넘지 못해 결국 당에 투항했고, 이로써
국내성을 비롯한 북방 여러 성이 당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됨.
▶ 666.12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12성 주민과 병력을 이끌고 신라에
귀부하면서, 고구려의 남방 전선은 신라에 뚫려버림.
□ 당과 신라의 진격
▶ 666.12 당 고종이
고구려 정벌을 본격적으로 준비함.
▶ 667.9
당군은 북서 방어의 핵심인 신성을 먼저 함락했고, 주변 16성도 잇달아
투항했음.
▶ 고구려는 신성을 탈환하려 대군을 보냈지만
금산에서 크게 패했고,
▶ 이어진 공세 속에서 당군은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까지 차례로 점령하며 진격을 확대했음.
▶ 668.1
당 고종은 추가 병력을 투입해 공세를 강화하며
▶ 668.2
당군은 고구려 북방의 요충지인 부여성을 함락했고, 주변 40여 성도
잇달아 투항했음.
▶ 고구려는 부여성 탈환을 시도했으나
설하수에서 패했고,
▶ 승세를 이어간 당군은 남쪽으로
진군해 대행성을 점령하고 압록책을 돌파함.
▶ 668.9
압록강을 건넌 당군은 욕이성을 함락해 청천강 일대를 장악했고,
- 평양성으로
남하하자 신라군도 사천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한 뒤 합류했음.
▶ 이렇게
형성된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을 한 달 넘게 포위하며 지속적으로 공세를
이어갔음.
□ 고구려 멸망
▶ 연남건은 보장왕의 항복 요청을 거부하며 끝까지
항전을 선택했지만,
▶ 668년 9월 군사권을 맡은 승려 신성이 나당연합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면서
평양성이 함락됨.
■ 이후
▶ 668
당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직접적인 지배 체제를 마련했지만,
▶ 고구려
부흥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당의 통치는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음.
▶ 698
이후 고구려 유민 세력은 동북 지역에서 발해를 건국해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자리 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