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의 공백기
▶ 1979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음.
▶ 1979.10
이후 전두환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고,
▶ 1979.12
최규하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유신체제 해체 절차에
착수했음.
□ 정승화와 전두환의 갈등
▶ 전두환은 권력 공백 속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를 견제하려는 정승화(참모총장)의 인사 조치를 하나회가
사전에 감지하면서 군사 반란을 준비하게 됨.
- 하나회는
육사 11기 출신의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군 내부의 비밀
사조직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특전사·수경사·보안사 등 핵심 보직을
장악하며 군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
↘ 군대 내 사조직은 공식 지휘 체계를 훼손하고
인사 농단, 정치 개입을 통해 군의 본질을 훼손하며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됨
■ 12.12 군사 반란
▶ 1979년 12월 12일 하나회는 자신들이 장악한 서울·수도권의 병력을 동원해 군사
반란을 시작함.
▶ 저녁
반란군은 10.26 사건 수사를 명분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을 관저에서
체포했음.
▶ 전두환은 체포 직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후 재가를
요청했지만, 최규하는 국방부 장관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함.
▶ 이에 특전사령관과 수경사령관 등이 반란 진압과
정승화 구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국방부 장관은 사건 직후 신변
위협을 느껴 도피했으나 반란군에 의해 붙잡힘.
▶ 결국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 체포를 재가하면서 12.12 군사
반란은 전두환 세력의 승리로 마무리됨.
- 비록 군 내부의 반란이 직접적으로 민간 정부를
전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전두환 정권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
■ 이후
▶ 이후
최규하 정부는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 전두환은 군과 정보기관을 통제하며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으며, 하나회 인사들은 군과 정부의 주요 요직을
장악했음.
▶ 서울을 중심으로 계엄 철폐와 유신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자,
▶ 신군부는
민주 인사와 학생 대표들을 대거 체포하며 강경하게 대응했음.
▶ 1980.5
결국 전두환은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을 계엄령
확대와 무력 진압으로 억누르고,
▶ 1980.9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정권을 장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