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팔만대장경

재조대장경, 고려대장경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초조대장경을 조성하였으나,
몽골의 침입으로 경판이 소실되자, 다시 국난 극복을 기원하며 팔만대장경 제작에 나섰음.
여러 대장경 판본을 대조·교정해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고, 이후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음.


대장경은 ‘큰 그릇’이라는 뜻으로
나무판에 글자를 새긴 경판과, 그 경판에 먹을 묻혀 종이에 찍어낸 인경본으로 전해짐.

팔만대장경

■ 배경
□ 불교의 동아시아 전래와 정착
 ▶ BCE 6C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깨달은 사람)가 되었고, 그의 가르침에서 불교가 시작된 뒤,
 ▶ CE 1C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아시아로 전해지기 시작하였음.
 ▶ 2C 이후 불교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쉬워졌고, 불교는 점차 동아시아에 뿌리내렸음.
 - 4~6C 한반도에서도 고구려·백제·신라가 차례로 불교를 공인하였음.

□ 목판 대장경의 시작
 ▶ 10C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필사로 전해지던 불교 문헌을 경판에 새겨 한데 모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 971~983 북송 태조의 명령으로 당시까지 전해진 불교 전적을 집대성한 최초의 목판 대장경 ‘개보장’이 제작되었음.
 ↘ 불교 문헌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 승단의 규칙을 담은 ‘율’, 경전을 해석한 ‘론’의 삼장으로 구분됨. 동아시아에서는 이렇게 번역·전승된 불교 문헌을 모아 체계적으로 편찬했는데, 이를 대장경이라고 함.
 ▶ 990~991 이후 북송에서 인쇄한 개보장 인경본 한 질이 제6대 성종 때 고려에 전해졌음.

□ 초조대장경 조판과 교장 편찬
 ▶ 1011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제8대 현종이 남쪽으로 피난하면서 큰 위기를 맞은 고려는
 ▶ 1011~1087 국난을 극복하고자 송의 ‘개보장’을 복각하여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고, 
 ▶ 11C 이후 의천이 주도하여 경전에 대한 승려들의 주석을 모은 교장(속장경)이 제작하였음.

■ 팔만대장경
□ 몽골의 침입
 ▶ 1231 몽골의 침입 이후
 ▶ 1232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했고, 몽골이 다시 침입하면서 대구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 경판이 불타 소실되었음. 

□ 팔만대장경 조판
 ▶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을 다시 만들기로 하고,
 ▶ 1236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과 지방에 분사도감을 설치해 팔만대장경 제작에 들어갔음. 
 ▶ 먼저 초조대장경 인경본과 송·요의 여러 대장경 판본을 서로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잡아 그 교정 내용을 정리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30권을 만들었고,
 ↘ '교정별록'도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있음.
 ▶ 1251 이후 이를 바탕으로 경판을 새기고 보존 처리를 거쳐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음. 

■ 이후
 ▶ 1398~1399 강화도에 보관되어 있던 팔만대장경 경판을 경남 합천 해인사로 옮겨져 안치되었고, 현재까지 동아시아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완본으로 남아 있음. 
 ↓ 팔만대장경판(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판과 인경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음.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음.
 ↓ 경남 합천에는 팔만대장경의 역사와 제작 과정, 보존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대장경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음.

□ 남아 있는 초조대장경 인경본
 ▶ 1965 일본 교토 남선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 인경본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다시 알려졌음.
 ↘ 현재 남아 있는 인경본 가운데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초조본 아비담비바사론 권11·17’은 호림박물관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77’은 가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이 외에도 여러 초조대장경 인경본이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음.

팔만대장경


# 참고 자료
[팔만대장경]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