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신정변
□ 무신정변의 배경과 전개
▶ 고려에서는 문신 중심의 정치와 무신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면서 무신과 하급 군인들의 불만이 점차 커졌고,
▶
의종이 측근 문신들과
유흥을 즐기는 동안 군인들은 급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각종 노역과
왕의 행차 호위에 동원되었음.
▶ 1170년 8월 결국, 정중부·이의방·이고 등은
무신정변을 일으켜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왕으로
세웠음.
□ 무신정변 직후의 권력 구도
▶ 정변을 주도한 이의방·이고는 정8품 산원에서 종3품
대장군으로 크게 승진해 정권을 장악하였고, 정3품 상장군이던 정중부도
종2품 참지정사에 올랐음.
- 그러나 정중부는
정변의 명목상 지도자이자 원로였을 뿐, 정변 직후의 병력과 행동 조직을
이의방·이고 등이 장악하고 있었음.
■ 이의방 집권기
□ 이의방의 권력 장악과 정중부와 연대
▶ 이의방·이고·채원은 자신들의 과격한 행동에
반대하던 고위 무신들을 먼저 숙청하였음.
▶ 1171.1
이후 이의방은 채원과 연합해 왕위를 노렸다는 혐의로 이고를
제거하였고,
▶ 1171년 4월 약 3개월 뒤에 채원까지 제거하며 권력을
독점하였음.
▶ 권력을 장악한 이의방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무신들의 신망을 받던 정중부와 부자 관계를 맺었음.
□ 김보당의 난과 의종의 죽음
▶ 1173 김보당은
동계(지금의 함경남도 남부와 강원도 동해안 일대)에서 의종의 복위를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음.
▶ 이후
이의방은 김보당의 진술을 구실로 문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으며,
폐위된 의종도 이의민에게 살해되었음.
□ 이의방의 권력 확대와 횡포
▶ 이의방은 유력한 문신·무신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고, 무신들을 지방관으로 파견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였음.
▶ 1174.3
또한 딸을 태자비로 들여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권세의 정점에
올랐으며,
▶ 이후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하였음.
□ 서북 지역 세력의 반란
▶ 1174.9 조위총이
정중부와 이의방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북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음.
▶ 이에 무신 정권은 토벌군을 파견했지만
서경(지금의 평양) 공략에 실패하였고, 다시 토벌군을 정비하였음.
■ 정중부 집권기
▶ 1174년 12월 정중부의 아들 정균은 승려 종참과 함께 이의방을 제거하였고,
정중부는 최고 재상직인 문하시중에 올라 중방을 중심으로 국정을
장악하였음.
□ 잇따른 민란과 정중부 정권의 불안
▶ 1176.1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났으나 무신 정권은 이를 토벌하는
데 실패하였음.
▶ 1176.6
이후 서경을 함락하여 약 2년간 이어진 조위총의 난을 진압했지만,
▶ 1176.9
남부 지역에서는 손청과 미륵산적 등이 잇따라 봉기해 충청도 일대를
장악하였음.
▶ 1177
이들 반란은 결국 진압되었으나,
▶ 정중부 일가의 권력
남용과 사치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정권 내부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음.
■ 경대승 집권기
□ 경대승의 정변과 정중부 정권의 몰락
▶ 1178.11 정중부가
문하시중에서 물러난 뒤, 사위 송유인이 실권을 장악하고 신망 높은 조정
관료들을 좌천시켰음.
▶ 이어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공주와 혼인하려 하자 무신과 관료들의 반발이 커졌고,
▶ 1179년 9월 경대승은 결사대를 이끌고 왕궁에 들어가 정균을 제거하였으며,
명종에게 거사의 뜻을 밝힌 뒤 금군을 동원해 정중부·송유인 일파를
처형하였음.
↘ 경대승은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한 뒤 아버지의
출세를 바탕으로 장군까지 빠르게 승진하였지만, 정중부 일가의 권력
남용과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었음.
□ 경대승과 이의민의 대립
▶ 경대승은 의종 시해의 책임을 물어 이의민을
비판하고, 문신과 유학자를 중시하는 복고적 정치를 지향하였음.
▶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경대승은 도방을 조직해 신변을 보호하였으며, 집권
이후에는 새로운 공식 직책을 맡지 않고 사저에 머물면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음.
▶ 1181
한편, 이의민은 경대승이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복을 두려워해 병을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갔음.
■ 이의민 집권기
□ 경대승의 죽음과 이의민의 집권
▶ 1183년 7월
경대승이 병으로 사망한 뒤 도방은 완전히 해체되었음.
▶ 이후 명종은 이의민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그를
개경으로 불러들였으며, 조정으로 돌아온 이의민은 권력을
장악하였음.
↘ 소금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의민은 뛰어난
체격과 무예를 바탕으로 군인이 되어 의종의 총애를 받으며 장교로
성장하였음. 이후 무신정변에 가담하고 의종 살해와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워 고려 무반의 최고 관직인 상장군까지 오름.
□ 이의민 일가의 횡포와 부패
▶ 권력을 장악한 이의민은 뇌물을 받고 백성의 집과
땅을 빼앗는 등 횡포를 일삼았으며, 그의 가족과 자녀들 역시
살인·간음·폭력 등을 저질렀고,
▶ 1193
김사미·효심의 난이 일어나자,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은 반란을 진압하러
출정했지만, 오히려 반란군과 내통하며 재물을 모았음.
■ 최씨 무신 집권기
□ 이의민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 이의민의 아들 이지영이 최충수의 비둘기를 빼앗은
사건을 계기로,
▶ 1196년 4월 최충헌 형제는 미타산 별장에서 나오던 이의민을 습격해
살해하고 그의 세력까지 제거하였음.
▶ 이후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최씨 무신 집권기가
시작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