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1920년대 농촌은
조선교육령(1911~)과
산미증식계획(1920~)으로 인해 문맹률이 높았고
빈곤에 시달렸음.
▶ 1929
조선일보에서 ‘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함.
▶ 1931.5
신간회 해소
이후, 민족주의 세력은 실천적 계몽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함.
■ 브나로드 운동
- 제정 러시아의 계몽운동 사상을 바탕으로 한
한국형 민족 계몽운동으로,
- 지식인들이
농민들에게 글과 숫자 등 기초 문해력을 교육하여 민족 자각과 사회
변화를 유도하고자 함.
- 동시에, 동아일보의
경제적 위기 타개라는 현실적 필요와도 맞물림.
- 하지만,
총독부의 승인을 얻은 ‘타협적 성격’의 운동으로, 운동의 자율성과
민족성에는 한계가 존재함.
▶ 1931~1934 동아일보는 계몽대 등 조직을 창설하고,
- 계몽대원들(주로 학생들)은 여름방학 동안
각지에서 문맹자를 대상으로 강습을 진행함.
-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브나로드
운동을 불온시하며 강습회를 단속하며 운동을 압박함.
- 또한
농번기 농민의 불만과 동아일보의 소극적인 지원으로 지역 사회와의
협력도 점차 약화함.
▶ 1934~ 조선총독부는 관제운동인 농촌진흥회 활동 외에 모든
민간운동이 금지시킴.
▶ 1935.6 결국
동아일보는 브나로드 운동의 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민족주의 대중운동은
크게 위축됨.
- 브나로드 운동은 국내외에서
1,547회의 강습회를 열었지만, 초기 기대치였던 문맹 퇴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