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백제 부흥 운동


660년부터 663년까지 약 4년간 이어짐

백제 멸망 직후, 흑치상지·복신 등을 중심으로 한 백제 유민들이 나당 연합군에 맞서 저항하였음.
백제 부흥군은 한때 세력을 크게 넓히기도 했으나, 지도층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점차 힘을 잃기 시작했고
결국 백강 전투에서의 대패와 주류성 함락을 계기로 백제 부흥 운동은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됨.

백제 부흥 운동

■ 이전
□ 대야성 전투
 ▶ 642.8 백제 의자왕대야성을 함락하는 과정에서 김춘추의 딸이 목숨을 잃자,
 ▶ 642 말 김춘추는 복수를 위해 고구려와의 동맹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음.

□ 나당 연합
 ▶ 이후 고구려 정복을 시도하던 당과 백제의 붕괴를 바라던 신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 648 김춘추는 당에 건너가 백제 정벌을 요청했고, 당 태종이 이를 받아들여 나당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음.
 - 더불어 두 나라는 동맹을 맺으며 당이 고구려를, 신라는 백제를 차지하기로 상호 이해관계를 정립함. 

□ 백제 멸망
 ▶ 660 나당 연합군은 1차 목표였던 백제를 향해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고,
 ▶ 내부 분열로 약화된 백제는 신라군과 당군이 사비성을 포위하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
 ▶ 660.8 의자왕은 사비성에서 웅진성으로 피신했으나 결국 항복하며 백제는 멸망하였고,
 - 당은 약속과 달리 백제 영토에 5도독부를 설치하며 직접 지배를 시도함.

■ 백제 부흥 운동
□ 백제 유민들의 봉기
 - 사료에 따르면 “신라군이 백제인을 모두 죽이려 한다”라는 소문이 기존의 원한과 결합하면서, 백제 유민들의 동시다발적 봉기를 촉발한 것으로 보임.
 ↘ 유민(遺民)은 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남아 옛 국가에 대한 정체성과 충성을 유지하던 백성

 -  임존성 (지금의 충남 예산, 사적 제90호)의 흑치상지와 주류성(지금의 충남 서천)의 복신(30대 무왕의 조카)·도침이 나당연합군에 맞섰음. 
 ↘ 남장성·정헌성, 두시원악(지금의 충남 청양)의 정무, 구마노리성(지금의 충남 공주)의 여자진(여자신) 등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음.

□ 백제 부흥군의 저항
 ▶ 660.8 당군은 백제 유민의 기세를 꺾기 위해 임존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자, 지배 기반을 약화시키려 의자왕과 왕족·신료·백성을 당으로 옮겼음.
 ▶ 이를 틈 타 백제 부흥군이 사비성을 포위하자 주변 20여 성이 호응했으나, 신라 무열왕이 태자와 함께 출정해 가담한 성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사비성을 구원함.

□ 고구려와 왜의 참여
 - 복신과 도침은 부흥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에 머물던 의자왕의 아들 풍의 귀국을 추진하며 왜의 군사 지원을 확보했고,
 - 660.10 고구려는 신라의 칠중성(지금의 경기도 파주)을 공격함.

□ 공방전
 ▶ 661 초 백제 부흥군은 풍의 귀국을 기다리며 사비성을 포위했지만, 실패하여 임존성으로 퇴각함.
 ▶ 신라군이 두량윤성을 공격하자 백제 부흥군은 이를 막아내고 철수하던 신라군에 역습을 가해 큰 피해를 줬음.
 ▶ 이어 백제 부흥군은 웅진성에서 출격한 당군을 대파하였음.

 ▶ 신라와 당이 고구려 공략에 집중하는 사이, 백제 부흥군은 식량 보급로를 차단해 웅진성을 고립시키고 남쪽의 여러 성을 되찾으며 세력을 넓혀 갔음.
 ▶ 이에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 문무왕은 김유신과 품일을 보내 옹산성과 우술성을 함락시키고 끊겼던 보급로를 복구함.

□ 백제 부흥군 지도층의 내분
 ▶ 왕자 풍이 귀국한 뒤, 복신은 도침을 제거하고 그의 군사를 흡수해 세력을 확장했음.
 ▶ 662.7 나당연합군은 이러한 내부 갈등을 기회로 삼아 공세를 더 강화함.

 ▶ 풍은 복신과의 권력 다툼 끝에 복신을 제거했으나, 백제 부흥군의 군세는 이미 크게 약화된 상태였음. 

□ 주류성 함락
 - 의자왕과 함께 당으로 끌려갔던 태자 융이 당의 지휘관으로 귀환하자, 임존성의 흑치상지는 이에 항복함.

 ▶ 663.8 나당 연합군은 백강과 육로로 군을 진격시켜 주류성을 수륙 양면에서 포위했고,
 ▶ 왜병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백강 전투에서 패한 백제 부흥군은 결국 주류성을 지켜내지 못함. 
 - 이때, 지수신이 임존성에서 끝까지 저항했으나 흑치상지에게 패해 고구려로 도피함.

■ 이후
□ 당의 한반도 정책
 ▶ 당은 기존의 5도독부 체제를 정비해 웅진도독부만을 남기고 직접 통치하는 구조를 갖춤.
 ↘ 당은 백제 지역의 지배력을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영토는 신라가 차지함.
 - 이어 백제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했으며, 신라는 계림대도독부로 삼아 문무왕을 그 책임자로 세움.

 ▶ 이후 신라가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백제의 옛 영토를 모두 확보함.

백제 부흥 운동


# 참고 자료
중학교 역사2, 금성출판사 2023
중학교 역사2, 미래엔 2023
[백제 부흥 운동]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2.12
[웅진도독부]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