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발해-당 전쟁


732년

당의 흑수주 설치에 대응해 무왕은 선제 행동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면서 발해–당 관계는 급속히 악화하었음.
이후 발해는 등주를 공격하였으나, 돌궐과 거란 등 배후 세력이 약화하면서 화친을 추진함.

발해-당 전쟁

■ 이전
□ 발해 건국
 - 고구려 멸망(668) 후 영주에 머물던 고구려 유민들은 혼란을 틈타 동쪽으로 이동했고,
 ▶ 698년 대조영 세력이 동모산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건국함.

 - 한편, 거란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은 돌궐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고,
 ▶ 이를 계기로 돌궐은 거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거란 또한 당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돌궐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됨.

□ 발해 무왕 즉위
 ▶ 713 당이 대조영을 ‘홀한주도독 발해군왕’으로 임명하며 발해-당이 정식 국교를 맺음.
 ▶ 719년 대조영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무왕(대무예)이 즉위하였고,
 ▶ 즉위 초반부터 말갈을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키며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하였음.

□ 대문예의 망명
 - 722 흑수말갈이 당에 사절을 파견해 공식 교섭을 시작했고,
 ▶ 726 당이 아무르강(흑룡강)과 쑹화강(송화강)이 합류하는 유역에 흑수주를 설치하면서 발해의 영향권에 있던 흑수말갈은 당의 지배 아래로 편입되었음. 

 ▶ 이에 무왕은 흑수말갈이 당과 결탁해 발해를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선제공격을 결정했고, 이를 반대하던 동생 대문예를 토벌군의 선봉으로 임명함.
 ▶ 그러나 대문예는 출정 이후 토벌 중지를 상소하였다가 무왕의 불신을 사 처형 위기에 놓이자 당으로 귀순하였고, 무왕은 대신 사촌 형 대일하를 보내 흑수말갈 공격을 계속하게 하였음.

 ▶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자 당은 그를 보호하였고, 무왕의 처형 요구에 대해 현종은 그를 안서로 옮긴 뒤 영남으로 유배되었다고 거짓으로 통보하였음.
 ▶ 이후 이 사실이 드러나 무왕이 다시 처형을 요구했으나, 당은 요구를 거절하며 발해를 압박하였고,
 ▶ 이에 발해는 당을 선제공격하는 결단을 내리게 됨.

■ 발해-당 전쟁
 - 730~732 거란이 영주(지금의 랴오닝성 서부 지역)와 유주(지금의 베이징 일대)에서 당군과 전투를 벌임.

□ 등주 공격
 ▶ 732년 9월 발해는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오늘날 중국 산둥성)를 공격해 성과를 거둔 뒤 철수했고, 
 ▶ 반격에 나선 당군은 이미 물러난 발해군을 붙잡지 못함.

 - 733 이후 발해는 돌궐의 지원을 받던 거란을 도와 마도산에서 당과 전투를 벌였으며,
 ▶ 733 겨울 당의 요청으로 참전한 신라는 별다른 성과 없이 철군했고, 당 역시 뚜렷한 전과를 얻지 못했음.
 - 한편, 무왕은 당에 대한 선제공격 이후에도 대문예를 제거하고자 자객을 보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진 못함.

□ 발해의 고립
 ▶ 734 돌궐은 군주의 사망 이후 내분에 빠지면서 대외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었고,
 ▶ 734.12 돌궐의 지원을 잃은 거란은 다시 당에 복속되었음.
 - 734 한편 신라가 단독으로 발해 공격을 시도하면서 발해의 외교 환경은 더 악화됨.

■ 이후
 ▶ 736 무왕은 고립된 국제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당과의 화친을 추진하였고, 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양국 간 전쟁은 종결되었음. 
 ▶ 737 이후 무왕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발해의 대당 강경 외교 노선도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

발해-당 전쟁


# 참고 자료
[발해·당 전쟁]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3
[무왕]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