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발해 건국
- 고구려 멸망(668) 후 영주에 머물던 고구려
유민들은 혼란을 틈타 동쪽으로 이동했고,
▶ 698년
대조영 세력이 동모산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건국함.
- 한편, 거란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은 돌궐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고,
▶ 이를
계기로 돌궐은 거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거란 또한 당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돌궐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됨.
□ 발해 무왕 즉위
▶ 713 당이
대조영을 ‘홀한주도독 발해군왕’으로 임명하며 발해-당이 정식 국교를
맺음.
▶ 719년
대조영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무왕(대무예)이 즉위하였고,
▶ 즉위
초반부터 말갈을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키며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 부분 회복하였음.
□ 대문예의 망명
- 722
흑수말갈이 당에 사절을 파견해 공식 교섭을 시작했고,
▶ 726 당이 아무르강(흑룡강)과 쑹화강(송화강)이 합류하는 유역에
흑수주를 설치하면서 발해의 영향권에 있던 흑수말갈은 당의 지배
아래로 편입되었음.
▶ 이에 무왕은 흑수말갈이 당과 결탁해 발해를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선제공격을 결정했고, 이를 반대하던 동생
대문예를 토벌군의 선봉으로 임명함.
▶ 그러나 대문예는 출정 이후 토벌 중지를 상소하였다가 무왕의
불신을 사 처형 위기에 놓이자 당으로 귀순하였고, 무왕은 대신 사촌 형 대일하를 보내 흑수말갈 공격을 계속하게
하였음.
▶ 대문예가 당으로 망명하자 당은 그를
보호하였고, 무왕의 처형 요구에 대해 현종은 그를 안서로 옮긴 뒤
영남으로 유배되었다고 거짓으로 통보하였음.
▶ 이후 이
사실이 드러나 무왕이 다시 처형을 요구했으나, 당은 요구를 거절하며
발해를 압박하였고,
▶ 이에 발해는 당을 선제공격하는
결단을 내리게 됨.
■ 발해-당 전쟁
- 730~732
거란이 영주(지금의 랴오닝성 서부 지역)와 유주(지금의 베이징
일대)에서 당군과 전투를 벌임.
□ 등주 공격
▶ 732년 9월 발해는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오늘날 중국 산둥성)를 공격해
성과를 거둔 뒤 철수했고,
▶ 반격에 나선 당군은 이미 물러난 발해군을 붙잡지
못함.
- 733
이후 발해는 돌궐의 지원을 받던 거란을 도와 마도산에서 당과 전투를
벌였으며,
▶ 733 겨울
당의 요청으로 참전한 신라는 별다른 성과 없이 철군했고, 당 역시
뚜렷한 전과를 얻지 못했음.
- 한편, 무왕은 당에
대한 선제공격 이후에도 대문예를 제거하고자 자객을 보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진 못함.
□ 발해의 고립
▶ 734 돌궐은
군주의 사망 이후 내분에 빠지면서 대외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었고,
▶ 734.12
돌궐의 지원을 잃은 거란은 다시 당에 복속되었음.
- 734
한편 신라가 단독으로 발해 공격을 시도하면서 발해의 외교 환경은 더
악화됨.
■ 이후
▶ 736 무왕은 고립된 국제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당과의 화친을
추진하였고, 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양국 간 전쟁은
종결되었음.
▶ 737
이후 무왕이 세상을 떠남에 따라 발해의 대당 강경 외교 노선도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