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몽골과의 강화
- 1231>
몽골의 침입이 이어지던
가운데
▶ 1258
최씨 무신정권이
몰락하자, 고려 왕실은 몽골과의 강화에 나섰음.
- 1259년
한편 몽골에서는 뭉케 칸의 사망으로 후계 경쟁이 벌어졌고,
▶ 고려의
태자였던 원종은 쿠빌라이를 만나 몽골군과 다루가치의 철수, 고려의
풍속 유지 등을 인정받으며 비교적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음.
□ 원종의 개경 환도 추진과 몽골의 압박
▶ 1259
고종이 세상을 떠난 뒤
원종이 즉위하여 원과의
관계 안정에 나섰으나, 무신집권 세력이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왕실과
무신정권의 갈등이 깊어졌음.
- 1260
한편, 칸으로 즉위한 쿠빌라이는
▶ 개경 환도에
소극적인 고려를 의심해 압박을 강화하고, 일본이 몽골과 외교 관계를
맺도록 설득할 것을 요구했으나 고려는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음.
■ 동녕부
□ 원종 폐위 사건과 동녕부 설치
▶ 1269년 6월 당시
무신집권자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을 왕으로 추대하자,
▶ 1269.10
서북면 일대의 최탄·한신 등은 임연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 뒤 몽골 사신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음.
▶ 1269.11
이후 몽골이 원종 폐위를 문제 삼아 압박하자 임연은 원종을 다시 왕위에
올릴 수밖에 없었음.
▶ 그러나 최탄 일행은 서경
일대에 몽골군의 주둔을 요청하였고,
↘ 쿠빌라이 칸은 최탄 등의 반란을 충성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인정하며 이들을 보호하였음.
▶ 1270.2 몽골은 서경에 군대를 주둔시킨 뒤, 최탄 등이 넘긴 서경과
서북면 일대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동녕부를
설치하였음.
□ 무신정권의 종식과 동녕부 반환 요구
▶ 1270년 5월
임유무가 제거되며 무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개경 환도가 추진되자,
▶ 1270.6>
개경 환도와 삼별초 해산 명령에 반발한 세력이
삼별초 항쟁을
시작하였음.
▶ 개경으로 돌아온 고려 조정은 무신정권이 몰락한 상황을 계기로
동녕부의 반환도 함께 요구하였지만, 몽골은 이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음.
□ 충렬왕의 즉위와 원(몽골)과의 관계 강화
▶ 1274.5 충렬왕은
태자 시절 쿠빌라이 칸의 딸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해 원(몽골) 황실의
부마가 되었고,
▶ 1274.6
같은 해 즉위하였음.
▶ 1275.12 한편, 원은 동녕부를 동녕로로 승격(총관부)하여 고려 서북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였음.
▶ 이후 충렬왕은
원의 일본 정벌에
적극 협력하고 쿠빌라이와 직접 소통하면서 원 황실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나갔음.
□ 내안의 난과 합단의 난
- 1287.4~6
원에서 내안(나얀)의 난이 일어나자 충렬왕은 쿠빌라이의 반란 진압에
적극 협력하였음.
↘ 칭기스칸의 동생들에게서 시작된 동방3왕가의
내안이 쿠빌라이에게 반기를 들며 일으킨 반란.
▶ 1290 이후 내안의
난에 가담했던 합단(카단)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고려 북방까지
침입하였음.
■ 동녕부 폐지 이후
□ 동녕부 이관과 서북면 반환
▶ 1290.3 원은 고려 서북면의 동녕부를 폐지하고 해당 지역을 고려에
반환하였으며,
▶ 이후 동녕부라는 명칭의 기관은 요동으로
옮겨졌으나 실질적인 기능은 크게 약화되었음.
↘ 동녕부 폐지의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내안의 난과 뒤이은 합단의 반란으로 요동 일대가
불안해지면서 원이 고려와의 관계를 안정시킬 필요가 커졌던 것으로
보임.
□ 요동 지역의 동녕부
▶ 1368 이후 원이
명에 밀려 북으로 물러나자,
▶ 동녕부는 기황후 일족을
비롯한 부원세력의 거점이 되어 고려의 북방을 위협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