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고구려의 굴욕
▶ 342 고구려는
전연의 침공으로 왕실 가족이 포로로 잡히며 외교적으로 크게
위축되었고,
▶ 371
이어 백제군의 평양성 공격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였음.
▶ 371
이후 즉위한 소수림왕은
본격적으로 국가 체제 정비에 나섬.
▶ 374
광개토왕은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출생하여
▶ 386
13세에 태자로 책봉됨.
■ 재위 기간
▶ 391년 고구려가
요동을 두고 후연과 대립하던 시기에 광개토왕이 즉위함.
↘ 370년 전연이 멸망하고, 384년 전연의 후예적
성격을 가진 후연이 건국됨.
□ 한강 이북 장악
▶ 391 광개토왕은 백제를 공격해 석현성과 관미성 등을 함락하고 한강
이북과 서해 한강 입구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한성을 북쪽과 서쪽에서
압박하였으며,
- 392 평양에
아홉 개의 절을 창건하였음.
□ 백제의 대응
▶ 백제는 북진이 가로막히자,
근초고왕 대에 가야·왜와
맺은 해상 동맹을 바탕으로 신라를 압박하였고,
▶ 392
위기에 처한 신라의
내물마립간은 왕자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며 구원을 청했으나, 당시 고구려는 후연과 요동
지역에서 대립하느라 남쪽 정세에 개입하지 못했음.
↘ 392년 백제와 전쟁 중 동시에 북쪽의 거란 정벌
기록이 있음.
▶ 394 백제
17대 아신왕은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수곡성 전투에서 패하고,
▶ 395
이어 패수 전투에서도 대패하여 결국 고구려에 밀려났음.
□ 패려, 숙신 정벌과 백제 제압
▶ 395 광개토왕은
거란계 집단인 패려를 정벌하고,
▶ 396년
후연이 북위의 공세에 밀려 하북 대부분을 잃어 세력이 약화되자,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하여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음.
- 이로써 백제는 북한산 이북의 영토를 모두
잃었고, 이듬해 아신왕은 군사적 지원을 구하고자 태자를 왜에 보냄.
▶ 398
또한 광개토왕은 만주의 숙신(식신)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조공을
받음.
□ 왜와 가야 격파
▶ 399 백제와
손잡은 왜가 신라 국경을 침입하자 내물마립간이 광개토왕에게 구원을
청했고,
↘ 광개토왕은 평양에서 신라 사신을 접견하며,
평양을 행정·외교의 중심지로 활용함.
▶ 400년 이에 광개토왕이 군대를 파견해 낙동강 유역에서 왜병과 구야국
세력을 대파하였으며,
- 그 결과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게 됨.
□ 후연과 왜의 침입
- 400 고구려
주력이 한반도 남부에 파견된 틈을 타 서쪽에서 후연이 침입해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하자,
▶ 402~
고구려는 요동 일대에서 반격을 개시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음.
▶ 404
이어 백제가 왜군과 함께 대방(황해도 연안으로 비정) 일대를 침입하자,
광개토왕이 친정하여 연합군을 전멸시키며 한반도 내 왜군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켰음.
□ 요동 장악과 동부여 정벌
▶ 407 고구려는 5만 대군으로 후연군을 격파해 요동 전역을 장악하고
그 세력을 축출하였으며,
↘ 광개토대왕릉비에는 407년 대규모 군사 동원이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 대상은 불분명하며, 이를 백제를 겨냥한
전투로 추정함.
▶ 이후 후연에서 정변이 일어나 북연이 성립하면서
대립은 종식되었음.
▶ 410
이어 고구려는 두만강 중하류의 동부여를 정벌함.
■ 사후
▶ 412
광개토왕이 세상을 떠난 뒤
장수왕이 즉위하였으며,
▶ 427
장수왕은 광개토왕의 평양 경영을 이어받아 평양 천도를 실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