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구려 19대 광개토왕

담덕, 광개토대왕, 영락대왕, 17대 소수림왕의 조카, 20대 장수왕의 아버지
재위 391년부터 412년까지

광개토왕은 즉위 직후 남쪽에서 백제를 압박하여 한강 이북을 차지하고, 결국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냈음.
이어 북쪽으로 거란과 숙신을 정벌하며 세력을 확장하였고,
서쪽에서는 후연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요동 전역을 장악하였음.
마지막으로 동쪽의 동부여를 정벌해 복속시키며 고구려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됨.

광개토대왕

■ 배경
□ 고구려의 굴욕
 ▶ 342 고구려는 전연의 침공으로 왕실 가족이 포로로 잡히며 외교적으로 크게 위축되었고,
 ▶ 371 이어 백제군의 평양성 공격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였음.
 ▶ 371 이후 즉위한 소수림왕은 본격적으로 국가 체제 정비에 나섬.

 ▶ 374 광개토왕은 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출생하여
 ▶ 386 13세에 태자로 책봉됨.

■ 재위 기간
 ▶ 391년 고구려가 요동을 두고 후연과 대립하던 시기에 광개토왕이 즉위함.
 ↘ 370년 전연이 멸망하고, 384년 전연의 후예적 성격을 가진 후연이 건국됨.

□ 한강 이북 장악
 ▶ 391 광개토왕은 백제를 공격해 석현성과 관미성 등을 함락하고 한강 이북과 서해 한강 입구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한성을 북쪽과 서쪽에서 압박하였으며, 
 - 392 평양에 아홉 개의 절을 창건하였음.

□ 백제의 대응
 ▶ 백제는 북진이 가로막히자, 근초고왕 대에 가야·왜와 맺은 해상 동맹을 바탕으로 신라를 압박하였고,
 ▶ 392 위기에 처한 신라의 내물마립간은 왕자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며 구원을 청했으나, 당시 고구려는 후연과 요동 지역에서 대립하느라 남쪽 정세에 개입하지 못했음.
 ↘ 392년 백제와 전쟁 중 동시에 북쪽의 거란 정벌 기록이 있음.

 ▶ 394 백제 17대 아신왕은 고구려 정벌에 나섰으나 수곡성 전투에서 패하고,
 ▶ 395 이어 패수 전투에서도 대패하여 결국 고구려에 밀려났음.

□ 패려, 숙신 정벌과 백제 제압
 ▶ 395 광개토왕은 거란계 집단인 패려를 정벌하고,
 ▶ 396년 후연이 북위의 공세에 밀려 하북 대부분을 잃어 세력이 약화되자,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하여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음. 
 - 이로써 백제는 북한산 이북의 영토를 모두 잃었고, 이듬해 아신왕은 군사적 지원을 구하고자 태자를 왜에 보냄.
 ▶ 398 또한 광개토왕은 만주의 숙신(식신)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조공을 받음.

□ 왜와 가야 격파
 ▶ 399 백제와 손잡은 왜가 신라 국경을 침입하자 내물마립간이 광개토왕에게 구원을 청했고,
 ↘ 광개토왕은 평양에서 신라 사신을 접견하며, 평양을 행정·외교의 중심지로 활용함.
 ▶ 400년 이에 광개토왕이 군대를 파견해 낙동강 유역에서 왜병과 구야국 세력을 대파하였으며, 
 - 그 결과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게 됨.

□ 후연과 왜의 침입
 - 400 고구려 주력이 한반도 남부에 파견된 틈을 타 서쪽에서 후연이 침입해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하자,
 ▶ 402~ 고구려는 요동 일대에서 반격을 개시해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음.

 ▶ 404 이어 백제가 왜군과 함께 대방(황해도 연안으로 비정) 일대를 침입하자, 광개토왕이 친정하여 연합군을 전멸시키며 한반도 내 왜군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켰음.

□ 요동 장악과 동부여 정벌
 ▶ 407 고구려는 5만 대군으로 후연군을 격파해 요동 전역을 장악하고 그 세력을 축출하였으며, 
 ↘ 광개토대왕릉비에는 407년 대규모 군사 동원이 기록되어 있으나 구체적 대상은 불분명하며, 이를 백제를 겨냥한 전투로 추정함.
 ▶ 이후 후연에서 정변이 일어나 북연이 성립하면서 대립은 종식되었음.

 ▶ 410 이어 고구려는 두만강 중하류의 동부여를 정벌함.

■ 사후
 ▶ 412 광개토왕이 세상을 떠난 뒤 장수왕이 즉위하였으며,
 ▶ 427 장수왕은 광개토왕의 평양 경영을 이어받아 평양 천도를 실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