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고려 제21대 희종

왕영, 제20 신종의 맏아들, 제22대 강종의 사촌 동생
1204년부터 1211년까지 약 7년 동안 왕위에 있었음.

희종은 최충헌의 허락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최충헌 암살 시도가 실패하면서 폐위되어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음.

고려 제21대 희종

■ 즉위 이전
□ 무신정권 아래에서 태자가 된 희종
 ▶ 1181년 희종은 무신정변 이후 경대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명종의 조카로 태어났음.
 ▶ 1196 최충헌은 정권을 장악한 뒤
 ▶ 1197 명종의 동생인 신종을 왕위에 올렸으며,
 ▶ 1200 이어 신종의 아들 왕영이 태자에 책봉되었음.

■ 희종 즉위와 최충헌의 권력 강화
 ▶ 1204년 정월 신종은 병이 깊어지자, 왕영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최충헌에게 양위를 요청하였고, 최충헌이 이를 허락하면서 희종이 즉위하였음. 
 ▶ 즉위한 희종은 최충헌에게 최고 수준의 관작을 내렸으며, 
 ▶ 1206 이어 그를 진강후로 봉하고, 흥녕부를 설치해 관원과 흥덕궁을 소속시킴으로써 행정적·정치적 권력 기반을 강화해 주었음.
 ▶ 1207 이후 희종은 최충헌에게 최고 관직과 작위를 내리려 하였으나, 최충헌이 이를 사양하였음.
 ▶ 1208 또한 희종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음.

□ 최충헌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왕숙의 개경 소환
 ▶ 1210.4 최충헌은 궁궐에 버금갈 정도의 저택을 지었으며, 이를 둘러싸고 사회적 불만이 많았음.
 ▶ 1210.6 한편, 최충헌은 폐위된 명종의 태자 왕숙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불러들였음.

□ 최충헌 암살 미수와 희종의 폐위
 ▶ 1211년 12월 최충헌이 희종을 알현하던 중, 내시 왕준명 등이 10여 명과 함께 최충헌을 공격하였음. 
 ▶ 최충헌은 희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희종은 이를 못 들은 척하며 문을 닫아버림.
 ↘ 희종이 직접 계획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충헌 제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임.
 ▶ 그러나 최충헌은 측근들과 도방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고, 희종을 폐위하였음. 

■ 폐위 이후
 ▶ 1211 최충헌은 왕숙을 왕으로 세웠고,
 ▶ 폐위된 희종은 강화도와 자연도(지금의 영종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 1215 교동현(지금의 교동도)으로 옮겨졌음.
 ▶ 1219 이후 개경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 1227.3 최충헌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 최우가 희종의 복위 시도를 의심해 다시 교동의 법천정사로 보냈고,
 ↘ 강화도·자연도·교동도는 모두 개경과 가까운 서해 연안의 섬으로, 감시하기 쉽고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시키기 좋음.
 ▶ 1237년 희종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됨.
 ↓ 희종의 무덤인 “강화 석릉”은 사적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능역에 석인상이 남아 있고 청자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음.
 ↓ 지금의 석릉은 강화나들길 3코스인 ‘고려왕릉 가는 길’에 포함되어 있음.




# 참고 자료
[희종]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