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무신정권 아래에서 태자가 된 희종
▶ 1181년 희종은
무신정변 이후
경대승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
명종의 조카로
태어났음.
▶ 1196
최충헌은 정권을 장악한 뒤
▶ 1197
명종의 동생인 신종을 왕위에
올렸으며,
▶ 1200
이어 신종의 아들 왕영이 태자에 책봉되었음.
■ 희종 즉위와 최충헌의 권력 강화
▶ 1204년 정월
신종은 병이 깊어지자, 왕영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최충헌에게
양위를 요청하였고, 최충헌이 이를 허락하면서 희종이 즉위하였음.
▶ 즉위한 희종은 최충헌에게 최고 수준의 관작을
내렸으며,
▶ 1206 이어 그를
진강후로 봉하고, 흥녕부를 설치해 관원과 흥덕궁을 소속시킴으로써
행정적·정치적 권력 기반을 강화해 주었음.
▶ 1207
이후 희종은 최충헌에게 최고 관직과 작위를 내리려 하였으나, 최충헌이
이를 사양하였음.
▶ 1208
또한 희종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음.
□ 최충헌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왕숙의 개경 소환
▶ 1210.4 최충헌은
궁궐에 버금갈 정도의 저택을 지었으며, 이를 둘러싸고 사회적 불만이
많았음.
▶ 1210.6
한편, 최충헌은 폐위된 명종의 태자 왕숙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불러들였음.
□ 최충헌 암살 미수와 희종의 폐위
▶ 1211년 12월 최충헌이 희종을 알현하던 중, 내시 왕준명 등이 10여 명과
함께 최충헌을 공격하였음.
▶ 최충헌은 희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희종은 이를
못 들은 척하며 문을 닫아버림.
↘ 희종이 직접 계획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충헌 제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임.
▶ 그러나 최충헌은 측근들과 도방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고,
희종을 폐위하였음.
■ 폐위 이후
▶ 1211 최충헌은
왕숙을 왕으로 세웠고,
▶ 폐위된 희종은 강화도와
자연도(지금의 영종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 1215
교동현(지금의 교동도)으로 옮겨졌음.
▶ 1219
이후 개경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 1227.3
최충헌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한 최우가 희종의 복위 시도를 의심해
다시 교동의 법천정사로 보냈고,
↘ 강화도·자연도·교동도는 모두 개경과 가까운 서해
연안의 섬으로, 감시하기 쉽고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시키기
좋음.
▶ 1237년 희종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됨.
↓ 희종의 무덤인 “강화 석릉”은 사적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능역에 석인상이 남아 있고 청자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음.
↓ 지금의 석릉은 강화나들길 3코스인 ‘고려왕릉
가는 길’에 포함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