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912년
태봉국(후고구려) 장수인
왕건이 나주로 출정해 현지
호족의 딸 오씨(장화왕후)를 만나 왕무를 낳았음.
↘ 왕건은 첫째 부인은 유씨(신혜왕후)와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음.
□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 918.6 지지
세력의 추대를 받은 왕건은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하였음.
▶ 왕건은 왕무를 후계자로 생각했지만,
당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 바로 태자로 삼지 못했고,
↘ 왕건은 여러 호족과 혼인으로 정치적 연합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왕무를 곧바로 후계자로 내세울 경우 다른 세력의
반발을 살 수 있었음.
▶ 921.12 이후에야 왕무를 태자로 책봉하였음.
▶ 930 고창
전투에서 승리하여 후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은 왕건은
▶ 935
견훤의 투항과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 936 이어 왕무는 후백제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앞장서 큰 공을
세움.
■ 즉위 이후
▶ 943.5 왕건이
세상을 떠나고, 혜종(왕무)이 왕위에 올랐지만,
- 왕건의 혼인 정책으로 형성된 여러 왕실·외가 세력과 신하들이
얽히면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벌어짐.
↘ 어머니 장화왕후의 가문이 다른 유력 호족들보다
세력이 미약하여, 혜종은 든든한 정치적 배후를 갖지 못했음.
□ 왕위 계승 분쟁
▶ 944 >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왕건과 소광주원부인 사이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하였고,
▶ 혜종을 습격하거나, 왕요·왕소 형제가
모반을 꾸민다고 고발하기도 하였음.
□ 외교
▶ 944~945 고려는
후진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외교 관계를 맺었고,
- 거란을
둘러싼 국제 정세 속에서 협공 논의에도 거론되었으나 정치적 혼란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음.
■ 사후
▶ 945.9
혜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 왕요·왕소 형제는 서경 세력을 동원하여 왕규를 제거한 뒤
정종(왕요)을 왕으로 추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