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127년 왕철은
제17대 인종과 공예태후
임씨의 맏아들로 태어났음.
▶ 공예태후는 왕철이 유흥을
즐기고 소인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차남인 대령후를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 1143 결국
왕철이 태자로 책봉되었음.
□ 정치적 혼란과 문벌귀족의 성장
- 한편, 인종 때 이자겸이
난(1126)을 일으켜 왕권을 위협하고
정국을 장악하려 했음.
- 이후
서경 천도 운동이
묘청의 난(1135)으로 이어졌으며, 난이
진압된 뒤 개경 문벌귀족의 세력이 더 커졌고, 왕권은 취약했음.
■ 즉위 이후
▶ 1146년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의종이 즉위하여
▶ 김부식과 정습명
등을 중심으로 왕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어려움을 겪자, 측근과 내시·환관 세력을 강화해 국정을 장악하려
하였음.
□ 측근 정치와 문무 갈등의 심화
▶ 1150년 전후
김부식과 정습명이 사망한 뒤 의종의 측근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으며,
▶ 이후
의종은 정사는 돌보지 않은 채 격구, 잔치, 불교·도교 기복 행사에
빠져들었고,
▶ 문신들이 무신을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무신들의
불만과 문무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음.
- 1157 한편,
의종은 반란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동생 대령후를 천안에
유배하였음.
□ 무신정변과 의종의 폐위
▶ 1170 문신 한뢰가
무술 시합에서 환갑이 넘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일어났음.
▶ 1170년 이어 의종이 보현원 행차를 마치고 개경으로 돌아오던 중,
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문신과
환관들을 제거하였고,
▶ 이후 의종은 폐위되어 거제로 유배되었음.
■ 폐위 이후
□ 무신 집권기의 시작
▶ 정중부·이의방·이고 등은 제19대 명종을 옹립하고
함께 정권을 장악했음.
▶ 이후 이의방이 이고를
제거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정중부도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였음.
□ 김보당의 난과 의종의 죽음
▶ 1173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내세워 거병했으나 실패하였고,
▶ 1173년
거병이 실패하면서 의종은 정중부의 명을 받은 이의민에게
살해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