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고려의 후삼국 통일
▶ 925 왕소는
태조 왕건과 신명순성왕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 936
이후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였음.
↘ 왕건은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혼인 정책을 적극 활용했지만, 그 결과 여러 왕자와
배경 세력이 생겨나 사후 왕위 계승과 권력 다툼이 벌어짐.
□ 혜종과 정종 시기
▶ 943 태조 왕건이
세상을 떠난 뒤 맏아들
제2대 혜종이
즉위했지만,
▶ 945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제3대 정종이 뒤를
이었지만,
▶ 949
역시 불안한 정국 속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음.
■ 즉위 이후
▶ 949년
왕소(광종)가 왕위에 오름.
↘ 당시 고려는 통일 직후여서 국가 체제를 정비해야
했고, 광종은 왕위 계승 갈등이 심한 가운데 즉위해 왕실과 연결된
호족·공신 세력의 힘을 억누르며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했음.
□ 북방 개척 추진과 후주와의 관계
▶ 950~968 장청진,
위화진 등 북방 지역에 성을 쌓고 일부 지역을 주로 승격시키며 지배력을
강화하였음.
↘ 고려는 태조 때부터 거란을 견제하고 여진을
통제하며 영토를 넓히기 위해 북방 개척을 계속 추진하였음.
▶ 951~953
후주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며, 이후에도 사신 교류를 이어갔음.
□ 956년 왕권 강화와 공신 세력 억제
- 광종은 후주 출신의 쌍기를 중용하였고,
-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호족들이 불법으로 거느리던 노비를 원래 신분으로 되돌려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음.
- 또한, 백관의 의복을 중국 제도에 맞춰
정비하여 공복 제도를 마련하였음.
- 이 시기부터 광종은 자기 뜻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왕족과
공신을 가리지 않고 숙청함.
□ 계속된 왕권 강화 정책
▶ 958 광종은 고려에서 처음으로
과거제를 시행하여
왕권을 지지할 관료층을 등용함.
▶ 960 이어 공복
제도를 정비하여 공복의 색을 자삼·단삼·비삼·녹삼으로 구분하였음.
▶ 960
나아가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고려의 자주성과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음.
□ 불교 진흥과 백성 구제
- 광종은 국사·왕사 제도를 마련하고 승과를
시행하며 여러 사찰을 세워 불교를 적극 장려하였음.
- 또한
재회를 열어 백성들에게 음식 등을 베풀고, 제위보를 설치하여 어려운
백성을 구제하는 데 힘썼음.
■ 사후
▶ 975년
광종이 세상을 떠나고,
▶ 제5대 경종이 즉위하여
대사면령을 내려 민심을 수습하고자 하였으나, 광종 대 개혁과 숙청의
여파로 혼란은 계속되었고,
▶ 981
이러한 갈등은
제6대 성종 대에 가서야
비로소 수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