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 거란의 팽창
▶ 916 거란을
건국한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멸망(926)시켰고,
▶ 936
후진으로부터 연운십육주를 할양받으며 정복왕조로 성장하였음.
↘ 연운십육주는 지금의 베이징 일대를 포함한
북중국의 전략적 요충지
- 936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뒤,
▶ 942 거란이
발해와 우호 관계를 맺고 있다가 돌연 배반해 멸망시킨 점을 비판하며
거란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음(만부교 사건).
□ 연운십육주를 둘러싼 송과 거란의 대립
▶ 979 중국을
통일한 송(북송, 960>)은 연운십육주를
되찾기 위해 거란을 공격했으나 패하였음.
- 984
당시 고려 제6대 성종은
압록강 유역의 통제권을 확보하려 했지만, 여진과의 충돌로 뜻을 이루지
못했음.
▶ 986 이후
송이 다시 거란을 공격했으나, 거란이 다시 승리하였음.
□ 거란의 북송 고립 정책
▶ 거란은 북송을 고립시키기 위해, 고려·여진·발해 유민 등 주변
세력과 북송의 관계를 끊으려 하였고,
▶ 991
고려와 북송의 연결을 차단하고 압록강 유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압록강 하류에 군사 거점을 설치하였음.
■ 1차 고려-거란 전쟁
- 993 여름
여진은 거란의 침입 준비를 고려에 알렸지만, 고려 조정은 이를 거짓으로
판단하여 대비하지 않음.
□ 거란의 침입
▶ 993년 겨울 소항덕(소손녕)이 이끄는 80만 거란군이 고려를 침입하였고,
고려는 초반 전투에서 봉산군을 잃는 등 패배하였음.
▶ 이어 거란이 항복을 요구하자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과 영토 할양까지 논의되었으나,
▶ 이후 안융진
전투에서 고려가 거란군의 공격을 막아내자, 거란은 다시 협상을
제안하였고 서희가 교섭에 나섬.
□ 서희의 담판
- 소항덕은 고려가 고구려 옛 땅을 침범했고,
거란과 국경을 맞대면서도 송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며 영토 할양과
사대를 요구했음.
▶ 이에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밝히며, 영토
문제를 따지면 거란의 동경(지금의 중국 랴오양시) 또한 고려의 옛
땅이라고 맞받아쳤음.
▶ 또 거란과 외교를 맺지 못한 이유는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며, 압록강 일대는 본래 고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였음.
▶ 거란은 서희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하고
군사를 물림.
■ 이후
- 고려는 거란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고,
▶ 994 봄
양국의 합의를 바탕으로 압록강 동쪽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음.
▶ 994~996 서희는 강동 6주 일대에 여러 성과 진을 쌓아 고려의 북방
지배와 방어를 위한 군사 거점 정비를 주도하였음.
□ 거란의 재침
▶ 1004 거란은
전연의 맹을 통해 송으로부터 매년 세폐를 받는 유리한 국제 질서를
형성하였음.
▶ 이후 고려의 북송 연계 가능성, 강동
6주의 전략적 가치, 승천태후 사망 뒤 성종의 권위를 재확립해야 할
필요성에 더해,
▶ 1009
고려에서
강조의 정변으로 제7대
목종이 시해되고
제8대 현종이
즉위하자,
▶ 1010
이를 구실로 삼아
2차 고려-거란 전쟁을
일으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