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 1894.8
청·일 전쟁 발발
▶ 1895.10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을미개혁(단발령 등) → 을미의병 발생
▶ 1898
매일신문·제국신문·황성신문 창간 → 의병 활동은 신문을
통해 알려짐
▶ 1904.2
러·일 전쟁 발발
▶ 1905.11.17 제2차 한·일 협약(을사늑약) → 대한제국 외교권 박탈
▶ 1905.11.20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로 을사늑약 체결을
전국에 알림
■ 을사의병
- 평민층 의병이 출현하였으며, 원주의병·홍주의병 등 을미의병
참여 세력이 가담
- 의병 부대 간 연합을 시작하였고, 산속에서
유격전을 펼치는 등 전술 변화
- 무력과 선전을
병행했으며, 외국에 지원과 협조를 요청
□ 강원도
- 원주에서
김용팔이 포수들을 중심으로 거병
□ 충청도, 홍주의병
▶ 1906 봄
홍산에서 민종식이 거병하였지만, 청양군 전투에서 패배
▶ 1906.5
민종식은 재거병하여 홍주성을 점령하지만, 한국주차군에 패배하여
민종식 등은 대마도로 보내짐
- 이후, 안병찬 등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
□ 전라도, 태인의병
▶ 1906.6
태인에서 최익현이 거병했지만, 관군과(동족 간) 전투를 포기하고
체포됨
□ 경상도
- 영양 일대에서
신돌석이 거병
▶ 1906
영덕, 영양 등을 점거 후, 일제의 공세로 인해 일월산 등으로 거점을
옮김
▶ 1907 봄~1908.11
활동을 재개했지만, 옛 부하에게 살해됨
- 이외,
영천과 동남부 일대에서도 정용기, 유시연 등이 거병
■ 이후
▶ 1907.7
고종 강제 퇴위, 정미7조약(대한제국 군대해산 등)
▶ 1907 정미의병
▶ 1908
일본의 공세와 물자 부족으로 유인석, 홍범도 등 의병장들은 만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