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연표

한국사 연표 권업회


경술국치 이후 설립되어,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추방됨.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한인 독립운동 단체로 독립운동 기반을 구축했지만,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다른 지역으로 추방됨.


권장할 권(勸), 업무나 산업 업(業), 모임 회(會)
 → 산업을 권장하는 모임

■ 이전
 ▶ 1863 고종 즉위
 ▶ 1864 조선인의 연해주(=프리모리예) 블라디보스토크 이주 시작
 ▶ 1907년 경 신민회 조직
 - 1910.6 이종호 등이 신민회에서 독자적 정치집단 형성하고 함북회에 참여하여 ‘북파(함경도파)’를 형성
 ▶ 1910.5 미주 지역에 대한인 국민회 조직
 ▶ 1910.8 경술국치 

■ 권업회
 - 러시아 지방정부로부터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러일 범인도 조약(1911.6)의 영향 아래 활동을 시작하여,
 - 표면적으로는 경제·사회적 한인 지원 단체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정치 단체임. 

 ▶ 1911.6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권업회 발기회 결성
 - ‘북파’가 발기회를 주도하고, 최재형과 홍범도가 회장과 부회장을 맡음.
 ▶ 1911.7 청년근업회(블라디보스토크 한인 청년회)가 권업회 발기회에 합류

 ▶ 1911.9 이상설 등 ‘경파(서울파)’가 권업회에 합류
 - 미주 국민회에서 러시아로 파견한 요인들이 정치체제에 대한 이견으로 ‘경파’와 ‘서파(평양파)’로 분리하여 대립
 ▶ 1911.12 러시아 지방정부의 노력과 경술국치로 인해 연합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서파'도 권업회에 합류
 ▶ 1912.4 총회를 거치며 권업회는 연해주 한인 통합 세력이 됨.

 ▶ 1912.4 신채호, 이상설 등을 주필로 권업신문을 간행 
 - 권업회의 활동과 재러 한인의 권리 신장을 알리고, 민족의식 고취와 문화 정체성 유지를 위한 역할을 함.

 ▶ 1913~ 권업회 임원이 초기 정치적 망명자 중심에서 지역 토착세력 중심으로 변화하고,
 ▶ 1914 신한촌 자치단체를 흡수하며 한인사회의 일상과 자치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함. 
 - 1914 7월 기준 10,000여 명의 회원과 10개의 지사로 구성

 ▶ 1914 대한광복군정부와 사관학교 설립
 - 대한광복군정부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비밀조직으로, 이상설과 이동휘 등이 이끔. 
 - 중국 왕칭현에 사관학교 설립

 ▶ 1914 9월에 이주 50주년 행사를 준비
 - 러시아 관료의 승인·지지를 얻어 한인사회를 결속시키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강화하고자 했음.
 ▶ 1914.8 1차 세계대전 발발 - 러시아와 일본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 관계를 형성
 ▶ 일본의 요청으로 권업회의 반일활동을 전개하던 한인들은 러시아에 의해 추방됨.




# 참고 자료
[권업회]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