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 결성
▶ 1920 간도참변
이후 만주 지역 항일단체들은 독립군을 조직하고 통합운동을 전개함.
▶ 1924~1925
참의부, 정의부,
신민부가 수립되어 지역
자치를 실시하였지만,
▶ 일본의 만주 침략과 한인
탄압이 심화되자, 독립운동 세력은 힘을 모아 더욱 효과적으로
저항하고자 함.
▶ 1926.7
중국 관내에서 시작된 민족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 1927.2 국내에서
신간회가 창립됨.
□
3부 통합 추진과 분열
▶ 1928.5
정의부 주도로 18개 단체
대표가 모여 전민족유일당 조직을 위한 회의를 개최함.
- 참의부와
신민부 대표가 참석하지 못했지만, 대일투쟁 방안과 정치·군사·경제
문제를 논의함.
- 그러나 단체들은 유일당 조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협의회’와 ‘촉성회’로 양분됨.
- ‘협의회’는 독립운동 단체의 연합을,
‘촉성회’는 기존 단체 해체 후 새로운 민족유일당 결성을 주장하며
대립함.
▶ 결국 합의에 실패한 양측은 각기
‘전민족유일당조직협의회’와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를 구성함.
▶ 1928.10
3부 통합을 위한 회의가 열렸지만,
- 유일당 결성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 참의부와 신민부 내 대표권 갈등 등으로
정식회의조차 열리지 못함.
▶ 1928.12 촉성회 측은 ‘혁신의회’를 조직하고, 군사력 우선 강화와 정치적 자치권 확보를 목표로 활동하기 시작함.
■ 국민부
▶ 1929.3
길림성에서 제2차 3부 통합회의가 개최되어
▶ 1929.4 정의부와 신민부 민정파, 참의부 일부 세력이 합류하여
국민부를 창설하고,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이 활동함.
▶ 1929.9
중앙의회를 개최하여 ‘군정(독립운동)’과 ‘민정(자치 행정)’을
분리하기로 함.
- 국민부는 각 지역에
지방집행위원회를 세워 재만 한인들의 자치 및 산업 운영을 담당하고,
- ~1929.12
유일당조직동맹은 조선혁명당을 조직하고 조선혁명군을 창설함.
- 각
지역에서 징수한 의무금으로 조선혁명군을 유지함.
▶ 1932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고 독립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국민부의 기능이 약화됨.
▶ 1934.9
또한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39)이 일제에 의해 순국하심.
▶ 1934.11 이에 군민 대표 대회를 열어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을
‘조선혁명군정부’로 통합하기로 결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