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즉위 이전
▶ 1315년 1월
왕정은 충숙왕과 명덕태후 홍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 1328.2>
세자의 신분으로 원에서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였음.
- 1320~1333
당시 원나라는 황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겪고 있었으며, 왕정은 이
과정에서 원 문종의 즉위(1328)를 도운
권력자 엘테무르를 만나게 됨.
■ 즉위 이후
□ 첫 번째 즉위와 폐위
▶ 1329
충숙왕이 양위 의사를
밝히자
▶ 1330년 충혜왕은 원나라로부터 고려 국왕으로 책봉되었으며,
덕녕공주(원 관서왕의 딸)와 혼인한 뒤 엘테무르의 후원을 바탕으로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음.
▶ 그러나 즉위 후 충숙왕의 측근들을
축출하면서 부자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음.
▶ 1332 이후 토곤 테무르(훗날 원 혜종)를 옹립하려 한다는 무고와 원
조정의 정치적 개입으로 폐위되었으며,
충숙왕이 복위하였음.
▶ 폐위된 충혜왕은 원에서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게 됨.
□ 정치적 기반의 약화와 귀국
- 1333 원
혜종(순제)이 즉위한 가운데, 엘테무르의 정적 바얀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충혜왕의 정치적 기반이 약화됨.
▶ 이후 바얀은
충혜왕의 문란한 행실을 문제 삼아 고려로 돌려보낼 것을 건의하였고,
▶ 1336
결국 충혜왕은 고려로 돌아오게 됨.
□ 왕위 계승과 복위
▶ 1339.3 충숙왕은
충혜왕에게 왕위를 계승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남.
↓ 아마도... 충숙왕은 아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심왕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직계 후손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 했던
것이 아닐까?
- 1339.8 이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조적 등이 심왕 왕고를 옹립하려다
반란을 일으킴(조적의 난).
▶ 1339.11
충혜왕은 원나라의 승인을 받아 왕위 계승이 결정되었으나,
▶ 1340.1
이듬해 바얀에 의해 소환되어 형부에 수감되었음.
▶ 1340.2
그러나 바얀이 조카 톡토에게 축출되면서 충혜왕은 석방되었고,
▶ 1340년 3월 톡토의 지원으로 고려 왕위에 복위하였음.
- 1340.4
한편, 기황후가 원나라 황후로 책봉되면서 고려에서도 기씨 가문의
세력이 확대됨.
□ 실정과 정치적 갈등
▶ 재위 기간 충혜왕은 사냥과 격구 등 각종 오락에 몰두하고
측근들의 횡포를 방치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줬으며, 여러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등 악행을 저지름.
▶ 1341.11
또한 기황후의 형제 기륜과 충돌하면서 기씨 가문과 갈등이 깊어졌고,
▶ 1343
기철 등 일부 신료들은 입성책동을 벌임.
■ 폐위 이후
▶ 1343.10 충혜왕은 원에서 파견된 고용보에게 체포되어 원나라로
압송되었고,
▶ 이후 원나라 황제의 질책을 받고 지금의 광둥성으로
유배되었으나,
▶ 1344년 1월
유배지로 향하던 중 지금의 후난성에서 세상을 떠남.
▶ 1344
이후, 8세의 충목왕이 원의
허락을 받아 왕위를 이음.